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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의 행복세상] ‘어르신 교통카드’ 단상

입력
2017.06.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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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되는 노인’ 아닌 ‘보탬 되는 어르신’

노인의 지혜와 경륜 소중히 활용하면

저출산ㆍ고령화 따른 인력난도 해소돼

필자는 지난 3월 사무실 근처 주민센터에 가서 ‘어르신 교통카드’를 발급받았다. 주소지 주민센터에서만 발급 받을 수 있는 줄 알고 한참을 시간 낭비한 후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사무실 근처에서 편리하게 발급 받았다. 평소 운동 삼아 자동차보다 지하철을 더 많이 이용하는 필자로서는 이때부터 승차권을 구입하는 번거로움 없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혜택을 곧바로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사실 교통카드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65세라는 나이만을 기준으로 교통카드를 발급해주는 시책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적어도 상위 몇 %에 해당하는 고소득층에게는 교통카드 발급을 하지 않는 편이 더 정의로운 처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설령 필자가 교통카드를 발급 받는다고 하더라도 별도로 승차권을 구입해서 이용할 생각까지 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막상 교통카드를 받고 보니 애초의 생각은 버리고 이제까지 잘 활용하고 있다.

지하철을 무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필자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어르신 교통카드라는 국가 시책을 나 혼자의 힘으로 바꿀 수 없을 바에야 일단 혜택을 누리고 그에 상응하는 만큼을 뜻 있는 곳에 기부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 노인’이 되지 말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어르신’이 되자는 다짐을 했다. 내년에 백수(白壽)를 바라보시는 김형석 교수님께서는 ‘노년의 미학’이란 “행복을 누릴 권리, 존경 받아야 할 의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에 따라 필자는 나이만 먹은 노인이 아니라 존경 받는 어르신이 되려면 행동도 그에 걸맞게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는 지하철을 탈 때 극도로 피곤한 경우가 아니면 경로석에 앉지 않고 더 연세가 드셨거나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께서 앉으시도록 양보하기로 마음먹었다.

고령자가 사회에 짐이 되지 않는 것을 넘어 도움이 되는 ‘어르신’이 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설화를 반추해 보게 되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산 채로 산속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후 장례를 지내는 고려장 풍습이 있던 시절 이야기다. 한 효자가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 눈물로 마지막 하직 인사를 하자 노모는 네가 길을 잃을까 봐서 나무 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두었다고 말한다. 효자는 그런 노모를 차마 버릴 수 없어 동네 사람들한테는 고려장을 했노라고 소문을 내고 남 몰래 노모를 봉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사신이 똑 같이 생긴 말 두 필을 끌고 와서 어미와 새끼를 구별하라는 문제를 내고 만일 답을 못 맞추면 조공을 올려 받겠다고 말했다. 조정에서는 전국적으로 방을 내려 답을 구했는데 그 효자는 노모의 지혜를 빌려 쉽게 답을 맞출 수 있었다. 말을 며칠 굶긴 뒤 여물을 주고 살피면 여물을 먼저 먹는 말이 새끼고 나중에 먹는 말이 어미라는 것을 노모에게 배운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고려장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일화인데 그리스 격언에 “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는 말이 있음도 매우 흥미롭다.

고려장에 얽힌 일화나 그리스 격언은 삶의 경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준다. 고령자라 할지라도 이 사회에 ‘짐’이 아닌 ‘보탬’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해 주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노인 복지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이렇게까지 발전하는 데 기여하신 어르신 세대에게 보답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인력난 해소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고령자의 경륜과 지혜를 잘 활용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번에 ‘어르신 교통카드’를 발급받은 것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짐이 되는 노인’이 아니라, ‘보탬이 되는 어르신’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깊이 고뇌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오종남 새만금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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