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 고리 1호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고리 1호기는 19일 0시 가동을 멈추고 같은 날 오전 10시에 공식 퇴역식을 가졌다.
가동 첫해인 1978년에만 우리나라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9%를 감당한 고리 1호기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늘어난 전력수요에 대응한 옹달샘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설계수명(30년)이 종료되는 시점부터 폐쇄와 연장가동을 두고 갈등이 촉발됐다. 원전 사고나 지진 같은 자연 재해와 인재는 노후 원전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했다. 상업 운전 시작부터 영구 정지까지, 고리 1호기 불혹의 역사를 살펴보자.
1978년 가동시작……세계 21번째 원전 보유국으로
1971년 11월에 착공해 1978년 4월 29일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자리한 한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다. 총 공사비는 3억 달러로 당시 우리나라 예산의 4분의 1수준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21번째 원전보유국으로 등극했다. 고리 1호기 가동을 기점으로 한국 원자력산업의 역사가 열린 셈이다.
설계수명 30년+연장 10년… ‘수명연장’ 밀고 당기기의 시작
고리 1호기의 설계수명(30년) 완료 시점인 2007년이 다가오면서 고리 원자로의 존속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가동 중단에 앞서 원전 운영자인 한수원은 2006년 6월 16일 고리 1호기를 10년간 추가로 가동할 수 있는지 허가를 받기 위해 ‘계속 운전 안전성 평가’ 보고서를 과학기술부에 제출했으며 과학기술부는 이때부터 심사를 수행한다.
2007년 6월 설계수명 완료로 고리 1호기의 가동이 중단됐으나 2008년 정부로부터 계속 가동 허가를 받아 2017년 6월18일까지 수명이 10년 연장됐다. 연장 결정이 나자 고리 1호기 인근 주민들은 거리로 나와 수명 연장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일부 전문가와 시민 단체는 평가 주체와 평가 기준이 졸속적이라며 불신을 표명하기도 했다.
후쿠시마 비극으로 촉발된 불안…
고리 반경 30㎞안에 380만 여명 거주해 밀집율 ‘세계 최고’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둘러싼 지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이후 한국 언론에서도 원전의 안전성 문제를 다뤘는데, 그 논란의 중심에 고리 1호기가 있었다. 방송에 나온 전문가들은 “설계 수명을 연장한 고리 1호기와 40년 가까이 연장 운영한 후쿠시마 원전이 닮은꼴”이라며 잠재적 재해에 취약한 고리 1호기의 한계점을 꼬집었다.
실제로 국토 면적당 원전 설비용량∙단지별 밀집도∙반경 30㎞ 이내 인구수 세계 1위라는 지표는 원전 사고에 취약한 한국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특히 고리원전 반경 30㎞안에 부산 ∙울산∙경남 382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2분’간의 완전 정전에 더 활발해진 탈원전 운동
이듬해인 2012년 고리원전 인근 주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2월 9일 오후 8시 34분쯤 고리 1호기에서 발전기 보호계전기를 시험하던 중 외부 전원 공급이 끊어진 것이다. 당시 비상디젤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아 발전소는 전원상실(black out) 상태가 12분 가량 지속됐다. 이 사고는 한달 가까이 은폐되다 3월 12일에 세상에 알려지면서 고리 원전 1호기 폐쇄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2012년 4월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 행동과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등 환경 운동 시민 단체에서는 고리 원전 폐쇄 운동을 위한 탈핵 버스 행사를 열었다. 비슷한 시기에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고리 1호기가 후쿠시마 원전보다 더 위험성이 높다”고 발표해 탈핵 여론에 힘이 실렸다.
한편 전원상실 사고 이후 고리 1호기 안전설비 보강작업이 이뤄졌으며 같은 해 6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 안전점검을 거쳤다. IAEA측은 고리 1호기가 안전하다고 말하면서도 원전폐쇄여부는 한국정부 몫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1차 수명 연장 ‘3,397억 원’ 손실 발생 의혹
한편 고리원전 1호 2차 수명연장 신청 기한(2015년 6월 16일)을 한 달 앞둔 2015년 5월, 원전 수명연장으로 수 천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자료가 발표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고리1호기 지역이 지역구(부산 해운대기장을)인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예산정책처에 ‘고리1호기 계속 운전 경제성 분석’을 의뢰한 결과 고리1호기 1차 10년 수명연장 기간 동안 3,397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2007년 한수원이 실시한 경제성 분석 결과와 5,765억원 가량 차이 나는 수치다. 한수원은 2007년 1차 수명연장을 하면 2,368억 원의 순수익이 발생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하 의원은 국회예산정책처와 한수원의 계산결과 차이를 지적하며 “한수원이 계속 운행에 유리한 방향으로 경제성 분석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 철저한 재조사 및 관련 책임자 문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구중단 결정…’2032년’까지 해체비용 ‘6,437억원’
결국 2015년 6월 12일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위원회가 고리 1호기 영구정지(폐로) 권고 방침을 결정했다. 국내 원전 역사상 처음으로 원전 가동을 영구 중단하게 된 것이다.
한수원이 추산한 고리 1호기 해체 비용은 총 6,437억 원이다. 해체완료 시점은 빠르면 2032년 말 정도로 예상된다
총 ‘15만3,600 GWh’ 생산한 고리 1호기 뒷모습, 탈원전 신호탄 될까?
약 40여 년의 세월 동안 고리 1호기가 생산한 전력은 15만3,600기가와트(GWh). 이는 부산시 전체 한 해 전력 사용량의 34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제 소명을 다한 고리 1호기는 현재 가동중인 24기의 원전에 바통을 넘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를 기점으로 40년 에너지 정책에 전환점을 가져오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큰 그림을 공개했다. 새 정책의 방향성은 기존의 ‘가격과 효율 우선’에서 벗어나 ‘환경과 안전 중시’로 요약된다.
문 대통령은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 폐기∙신규 원전 건설 계획 백지화∙원전 설계수명 연장 중단 방침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을 “대통령이 직접 점검하고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진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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