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를 예술로 승화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할 수 있다는 건 배우에게 보람 있는 일이지요.” 배우 송강호가 또 다시 한국 현대사 비극의 한복판에 선 이유다.
8월 개봉을 앞둔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그는 1980년 5월 광주로 간다.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광주로 갔다가 5ㆍ18 민주화 운동을 목격하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을 연기한다. 힌츠페터 기자는 당시 독일 공영방송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삼엄한 언론 통제에도 광주의 실상을 취재해 전 세계에 알렸다. 만섭 역시 익명의 실존 인물이다.
송강호는 앞서 영화 ‘변호사’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5공 시절 대표적 용공조작사건인 부림사건을 변론한 변호사로 분했고, ‘효자동 이발사’에선 1950~1970년대 뒤틀린 역사에 멍든 소시민을 연기하기도 했다.
20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열린 ‘택시운전사’ 제작보고회에서 송강호는 부담감에 ‘택시운전사’ 출연 제안을 거절했던 일화를 공개하며 “하지만 ‘변호인’ 때처럼 시간이 지나도 ‘택시운전사’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며 “힘들더라도 그 뜨거움과 열망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그는 ‘꽃잎’ ‘화려한 휴가’ 등 1980년 광주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의 차이를 “광주를 바라보는 태도”라고 설명했다. 만섭의 대사 중에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를 인상 깊게 꼽으며 “인간의 상식과 도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도 말했다.
송강호는 1980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고 한다. 당시 언론이 통제된 상황에서 라디오 뉴스로 사건을 처음 접했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만 알고 있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건의 진실과 아픔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5ㆍ18을 알린) 힌츠페터 기자의 용기와 진실에 대한 열정을 알게 된 뒤 배우로서 숭고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사’는 지난해 여름 촬영을 했다. 지난 정권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던 때 영화가 기획되고 제작됐다. 연출자 장훈 감독은 “당시엔 주변에서 (정치적 문제로) 투자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었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았다”며 “이 영화도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위축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떤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준비를 했는데 다행히 지금은 달라진 시대 분위기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됐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연출자와 출연진은 영화에 대한 확대 해석이나 선입견은 경계했다. 송강호는 “관객들이 정치적 무게감을 가질까 걱정스럽다”며 “기분 좋게 재미난 대중영화 한 편을 본다고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유쾌하고 밝은 부분들도 영화에 담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