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탈퇴를 선언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충실한 이행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제주 총회에서 다시 강조했다. 미국의 고립주의에 따라 공백 상태가 된 국제 리더십을 중국이 틀어쥐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진리췬(金立群) AIIB 총재는 지난 17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AIIB 회원국은 모두 파리협약에 가입한 당사국”이라며 “파리협약이 이행될 수 있도록 AIIB가 중요한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선언 이후 미국 대신 ‘협약 수호자’를 자처해 온 중국 정부의 입장이 중국 재정부 부부장(차관) 출신인 진 총재의 발언으로 재확인된 것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도 최근 독일 방문시 “중국은 파리협약을 가장 먼저 비준한 나라로서 그 이행을 항상 적극적으로 강조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의 파리협약 강조는 미국에 기댔던 유럽연합(EU)과의 연대까지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진 총재는 특히 “AIIB는 인프라 투자 시 신재생에너지, 이산화탄소 감축에 우선 순위를 둘 것”이라며 “회원국이 저탄소 미래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파리협정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AIIB와 파리협정을 통해 미국의 빈자리를 채우고 국제 리더십을 더욱 키우겠다는 게 중국의 속내다. 중국은 나아가 AIIB의 인프라 투자를 고삐로 아시아 국가들과의 제휴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우선’(pivot to Asia) 전략으로 중국의 확대를 견제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 문제에 주력하며 중국이 국제 영향력을 도모할 여지는 더 커졌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는 이번 제주 총회를 통해 몸집을 더 불리며 총 80개 회원국을 거느린 거대 국제금융기구로 거듭났다. AIIB는 이번 총회와 함께 열린 이사회에서 아르헨티나 통가 마다가스카르 등 3개국의 회원국 가입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AIIB는 지난해 초 57개 회원국으로 창립한 뒤 1년여 만에 23개 회원국을 더 확보했다.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 제3세계뿐 아니라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호주 등 선진국들도 함께 가입국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총회에는 회원국 재무장관 및 대표단, 국제기구 대표 및 관계자, 국내외 금융ㆍ기업인 등 2,000명이 참석했다. AIIB는 미국 중심의 세계은행(WB)이나 국제통화기금(IMF)에 대응하는 국제기구로서의 위상을 크게 확대했다.
한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AIIB 총회에서 의장으로 각종 회의를 주재하고 주최국 대표로서 각국 재무장관들과의 면담을 이어가는 등 국제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김 부총리는 총회 개막일인 16일 샤오제(肖捷) 중국 재정부장과 이란ㆍ호주ㆍ라오스 수석대표와 면담했고, 이튿날에는 싱가포르ㆍ스리랑카ㆍ이집트 재무장관과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중국 밖의 나라에선 처음 열린 AIIB 제주 총회는 18일 폐막됐다.
서귀포=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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