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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칼럼] 코끼리 곡선과 세계화의 포용성

입력
2017.06.1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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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 옹호해야

해외에서 조선사 구조조정 예의주시

시장개입에 대한 선진국 경계심 커져

코끼리 곡선이라고 있다. 세계화가 급진전된 1988년부터 20여 년간 세계소득 증가율을 소득분위별로 그린 그래프인데 신흥국 중산층이 위치한 3~7분위 소득증가율은 코끼리 머리처럼 높지만 선진국 중산층이 있는 8ㆍ9분위는 아래로 늘어뜨려진 코처럼 낮다. 값싼 노동공급과 승자독식으로 세계화가 신흥국과 고소득계층에게 유리했고 선진국 근로자는 나빠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국제적 소득불균형 문제를 다룬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곡선은 처음 등장한 2012년에는 별 관심을 못 끌었지만 이후 유명세를 탔다. 올해 OECD 각료회의 보고서 초안에도 포함되었는데 세계화 영향을 평가하는 건 괜찮지만 선진국 피해를 부각하고 선ㆍ후진국 갈등을 조장하겠다 싶어 이 곡선을 빼고 분위별 세계소득 시계열 자료를 제시하게 했다.

OECD 각료회의는 35개 회원국 각료들이 매년 6월초 만나 세계경제 현안과 정책을 논의하는 장(場)인데 회의 아젠다와 분위기를 보면 국제정세와 정책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브렉시트, 미국 대선 등 근간에 나타난 세계화의 정치경제적 파장을 감안하여 올해의 화두는 “모두를 위한 세계화 만들기”였다. 여느 해처럼 각료선언문과 보고서에 자국 입장을 반영하려는 공식 회의와 물밑 교섭이 여러 달 진행되었지만 올해 논의는 유달리 치열했고 예년과 다른 몇 가지 현상도 눈에 띤다.

우선 선진국의 세계화 우려가 신흥국에 대한 단순한 경계심을 넘어서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끼리곡선 논의와 같이 경제의 어려움을 신흥국 탓으로 여기는 선진국의 피해의식이 있는 가운데 일부 신흥국이 시장경제 원칙을 어기고 불공정한 게임을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예컨대 철강 공급과잉이 부당한 국가 개입에도 원인이 있다는 인식하에 글로벌철강포럼을 출범시켜 중국 등 공급과잉국을 압박하고 있다. 조선 분야도 비슷한데 우리나라의 조선사 구조조정에 대해 경쟁국들은 눈에 불을 켜고 정부의 부당지원 소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서 국가보조금과 시장왜곡조치 방지, 공정한 국제경쟁기반 내용이 각료선언문에 강하게 담겼다. 선진국 입김이 거세질 분야라 국내 산업/기업 구조조정, 무역, 투자 문제를 다룰 때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 구도에도 균열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입장 차이는 날 수 있지만 국제 규준과 협력의 큰 틀 속에서 양보와 타협으로 합의점을 찾았던 것이 그간의 상례이다. 그러나 올해 각료회의에서는 보호주의 배격, 기후협약 이행 등 기본적이고 이전에 합의된 내용조차 선언문에서 통째로 빠지고 별도의 의장 성명서에 담기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균열이 일시적인지 확산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신고립주의, 국가간 갈등이 지속되거나 법보다 주먹이 앞서면 답답한 쪽은 힘 약한 나라들이다.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를 옹호하고 G20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국제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국제적 우호세력을 넓혀야 한다.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전향적 접근 또한 의미있는 변화이다. 분배 악화가 세계화 탓만은 아니지만 개방과 경쟁의 파수꾼인 OECD가 세계화의 문제점을 인정한 건 예삿일이 아니다. 전체적인 순효과는 긍정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세계화의 혜택이 공유되지 못했고 정책대응이 불충분했다는 반성이 여러 나라 반대에도 불구하고 채택되었다. 모두를 위한 세계화를 만들려면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개인, 기업, 지역, 국가 차원의 다양한 정책도 제시하고 있다. OECD의 포용적 성장은 사람중심 성장모델, 불평등 시정과 경제사회적 소외 해소 등 새 정부 정책기조와도 맥을 같이한다. 세계화가 지속가능한 성장과 웰빙의 동력으로 활용되게 하려면 정책 패러다임의 전반적인 재검토와 함께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인적 역량 확충, 공정한 경쟁, 사회안전망 강화, 중소기업 혁신 등 유인 부합적인 포용성 기제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

윤종원 주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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