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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블랙 로펌과 법조계의 책임

입력
2017.06.1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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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시험을 합격한 로스쿨 졸업생은 6개월의 의무 실무연수를 거쳐야만 법률사무소를 열 수 있다. 이 실무연수는 일반적으로 법원 검찰청 법률사무소 등의 법률기관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6월15일자 한국일보에서 보도된 것처럼, 이 제도를 악용하는 법률사무소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법률사무소는 청년 변호사들에게 실무연수를 하기 보다는 이들의 열정을 이용해서 낮은 급여로 그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 흔히 이런 법률사무소를 ‘블랙 로펌’이라 한다.

보도된 블랙 로펌의 실태는 법조계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충격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법조계 주변의 소문을 통해 이들의 존재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블랙 로펌은 단지 청년 변호사들을 저임금으로 활용한다는 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기사에서 지적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청년 변호사들의 실무 지식을 얻을 기회를 박탈하고 그 윤리의식을 훼손하는 게 더 큰 문제이다.

기성 법조인들이 변호사를 포함한 청년 법조인들에게 실무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법조계의 오랜 전통이다. 역사적으로, 법률 교육의 시초는 법원, 검찰청, 법률사무소와 같은 법률기관 내에서 이뤄지던 도제식 교육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십 년 동안 기성 법조인들은 후배 법조인들의 실무 교육을 위해 스스로의 시간을 할애하고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였다. 이런 실무연수를 통해 청년 법조인들은 법률가다운 윤리의식과 직업적 태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블랙 로펌을 포함한 모든 기성 법조인들은 이 전통의 수혜자다.

블랙 로펌에서 실무연수를 받는 청년 변호사들은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하고, 윤리적으로 나쁜 본보기를 경험한 채 법조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변호사는 자신의 법적 지식을 이용해서 국민의 권리 구제에 조력함으로써 법치국가 원리를 실현한다. 따라서 청년 변호사에 대한 실무연수는 로스쿨에서 배운 지식을 실무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학습하고 그 소명에 어울리는 윤리의식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블랙 로펌은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그들이 전문직으로서 토대를 쌓아야 할 그 6개월을 헛되이 소모시키는 것이다. 즉 블랙 로펌은 청년 변호사를 착취할 뿐만 아니라 법조계 전체의 전문성과 윤리의식을 훼손한다. 그럼에도, 변협과 법무부는 그에 대한 실태조사나 단속에 소극적이다. 이 점에서 블랙 로펌의 존재와 관련하여 변협과 법무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변협의 설립 목적 중 하나는 회원인 변호사의 권익 보장이다. 청년 변호사들 역시 변협의 회원이므로 변협은 그 권익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기사에 따르면, 블랙 로펌에 대한 실태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성명서 발표와 같은 미봉책만 쓰고 있다고 한다. 이는 명백한 임무 방기다. 변협은 하루빨리 블랙 로펌의 실태를 조사하여 해당 변호사를 징계하고, 청년 변호사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실무연수라는 미명 아래 동료 변호사를 착취하는 변호사만큼 변호사로서의 품위를 훼손하는 비위가 없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징계는 엄중해야 한다.

법무부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변호사법에 의하면, 실무연수를 담당하는 법률기관은 실무연수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법무부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연수기관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동안 법무부는 블랙 로펌의 실태를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법무부가 변호사 자치의 원칙을 들어 변명할지 모르지만, 스스로 실무연수 등 법조인 양성 교육에 대한 감독기관으로 자처하는 이상 그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변협과 법무부는 로스쿨뿐만 아니라 기성 법조계도, 좋은 법조인을 양성할 공동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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