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정숙씨’는 손편지를 잘 쓴다. 활달한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또 다른 소통방식이다. 포스트잇 같은 데 투박한 필체로 갈겨 쓴 짧은 글에서 정감이 물씬 묻어난다. 관례와 격식을 깨 눈길을 끌었던 지난달 19일 5당 원내대표 초청 청와대 오찬 때도 김 여사의 손편지가 등장했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 후식으로 내놓았던 인삼정과를 정성스럽게 포장해 원내대표들 손에 선물로 들려 보냈는데, 여기에도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귀한 걸음 감사하다, 국민이 바라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하자”는 메시지였다고 한다
▦ 이날 오찬에 참석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김 여사에겐 황현산 수필집 <밤이 선생이다>를 선물했다. 김 여사가 이 수필집을 읽고 노 원내대표에게 보낸 편지가 화제다. 14일 열린 ‘2017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축사를 한 김 여사는 마침 동석한 노 원내대표에게 정유정 작가의 에세이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을 답례로 선물했는데, 여기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 이번엔 손으로 직접 쓰지 않고 컴퓨터 자판으로 작성해 출력한 꽤 긴 글이다.
▦ 노 원내대표는 “동봉한 편지가 참 따뜻하다. 함께 나눌 내용이 많아 양해도 구하지 않고 공개한다”며 김 여사의 편지 전문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그 한 대목이 짠하다. “(황현산) 선생의 글 구절구절에서 저의 처지를 생각해 봅니다. 새시대가 열린 줄 알았는데, 현실은 여전히 아픈 일들로 가득합니다. 저야말로 이제는 ‘그 책임을 어디로 전가할 수도 없는 처지’에 이르러서 마음만 공연히 급해집니다”라고 쓴 부분이다. 얼핏 문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 속에서도 고위직 인사논란과 산적한 현안에 봉착한 새 정부의 처지를 떠올리게 한다.
▦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짧은 기간에 영부인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관례적인 행사 말고도 원내대표 초청 오찬, 민주당지도부 초청 만찬과 같은 공식 비공식 행사에 대통령과 동반 참석하는 일이 꽤 잦아 ‘정무특보’라는 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너무 나서는 게 아니냐며 모종의 ‘사고’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 원내대표에게 보낸 편지에서 배어나듯 ‘속 깊은 성찰’이 바탕에 있다면 기우에 지나지 않을 터. 소통 내조와 함께 고단한 국민의 삶을 따뜻이 보듬는 영부인의 상을 새로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이계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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