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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서] 프랑스, 퇴근 후엔 업무 스위치 ‘OFF’… 이메일·전화 ‘차단’

입력
2017.06.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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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 발전에 24시간 연락

‘번아웃 증후군’ 사회문제로 대두

상사 연락 안 받아도 될 권리 보장

회사는 직원들 휴대폰 번호 몰라

진정한 저녁 보장하려 노력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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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형 건설사인 A사는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올해 초 시행된 ‘퇴근 후 업무 연락 금지법(엘 콤리·El Khomri)’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직원들이 퇴근 이후에도 회사 인트라넷에 연결이 돼 있는지 등을 점검하고,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는 업무 연락을 하지 않도록 주지시켰다. 사무실 내에서만이 아니라 외근 현장이나 집에서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문제라, 회사는 구체적인 실행 매뉴얼을 노조와 함께 만들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스마트폰 등을 통해 퇴근 후 업무용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사용하는 일이 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퇴근 후 접속 차단, 연락하면 징계

일명 로그오프법으로 불리는 이 법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로 시행되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법은 노동자에게 퇴근 후 상사의 연락에 응답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보장한다. 전화뿐만 아니라 이메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회사 내부 전산망 등 모든 소통 경로가 규제 대상이며, 50명 이상 기업에 적용된다.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 내 식당에서 직장인들이 점심 식사를 위한 식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파리=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 내 식당에서 직장인들이 점심 식사를 위한 식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파리=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사실 프랑스는 퇴근 후 직원의 사생활 보호에 철저한 편이다. 대부분 회사가 직원들의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아예 모른다. 중간관리자 이상에만 업무용 휴대폰을 지급한다. 그런데도 로그오프법을 제정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퇴근 후 업무 연락이 잦아진 현실을 막을 수 없었던 탓이다. 프랑스 중소자영업자 모임인 오다스 관계자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가 보급되고 이메일로 업무를 보는 일이 많아지면서 업무량이 급격히 늘었다”며 특히 중간관리자들이 번아웃(burn-out)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카카오톡으로 대변되는 모바일 메신저가 직장인을 회사에 24시간 매어 두는 족쇄가 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국내 노동자 2,402명을 대상으로 스마트 기기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6.1%가 퇴근 후나 주말에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업무를 봤고, 27.5%가 스마트폰을 쓰면서 업무가 늘었다고 답했다. 스마트 기기로 인한 초과 근무 시간은 주 11.3시간에 달했다. ‘메신저 감옥’이라는 오명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이런 탓에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6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퇴근 후 업무 카카오톡 금지법'을 대표 발의, 현재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디지털기기 원천 제한” 지적도

로그오프법 발효 후 프랑스 기업들은 퇴근 후 연락 시 제재를 제도화하거나 기술적으로 접속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있다. 타이어 기업 미쉐린은 지난해 로그오프법 관련 노사 합의문을 작성, 별도의 원격연결제어 시스템을 통해 스마트폰, 노트북, PC 등으로 업무시간 이외에 접속한 건수를 파악해 한 달 5회 이상일 경우 제재하도록 했다. 처음 적발되면 경고를 주고 넘어가지만 두 번째 적발 때는 상황에 상응하는 인사 조치를 취하고, 세 번째 적발되면 외부 기관에 처리를 넘긴다.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은 업무시간 외 연락을 기술적으로 차단했다. 업무 종료 30분 후 업무용 스마트폰의 이메일 기능이 중지되고, 다음날 근무 시작 30분 전에야 서버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또 다른 자동차 기업인 다임러 벤츠는 직원이 휴가 중일 경우 도착하는 이메일을 자동 삭제하고, 보낸 사람에게 ‘부재중’이라는 정보와 함께 업무 대체자의 연락처가 전달되도록 했다.

프랑스의 '퇴근 후 업무 연락 금지법’
프랑스의 '퇴근 후 업무 연락 금지법’

하지만 접속을 끊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퇴근 후에는 업무 지시를 받지 않지만, 다시 출근해 이메일 등에 접속해 보면 쌓인 업무가 폭탄처럼 쏟아지기 때문이다. 과도한 정보 자체가 생산성을 저하시킨다는 시각도 있다. 프랑스 비즈니스포럼의 파트릭 티에바르 변호사는 “노동자들이 평균 하루 업무시간의 30%를 이메일 확인에 소모하고, 그만큼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정보가 넘쳐나니 오히려 정보를 선택하고 활용하는 게 복잡하고, 업무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메일 등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기업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결근, 병가, 사직, 해고 등이 많다는 프랑스 국립보건안전산업연구원(INRS)의 연구도 있다. 티에바르 변호사는 “무차별적인 이메일 업무 지시는 직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빼앗기 쉽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정보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기업도 있다. 프랑스 최대 통신회사 오랑쥐(옛 프랑스텔레콤)는 직원들에게 각자 디지털 기기 사용량을 점검해 표로 만들도록 하고, 지나치게 사용시간이 긴 직원에게는 이를 경고한다. 오랑쥐는 또 노사 협약을 통해 업무시간 중 스마트폰 사용을 아예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파리·몽트뢰이=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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