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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출근길은 안녕하신가요

입력
2017.06.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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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하는 장소, 원하는 시간에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족. 대도시 집중화, 젠트리피케이션, IT기술 발달, 변화하는 노동 환경 속에서 원격근무는 기업과 직원 모두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신이 원하는 장소, 원하는 시간에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족. 대도시 집중화, 젠트리피케이션, IT기술 발달, 변화하는 노동 환경 속에서 원격근무는 기업과 직원 모두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 노마드

도유진 지음

남해의봄날ㆍ240쪽ㆍ1만6,000원

만약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당신은 스스로의 연봉을 삭감할 의향이 있는가. 억울하다면 반대의 질문도 가능하다. 기업의 대표로서 사무실 임대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면 당신은 그걸 직원들에게 어떤 형태로 돌려줄 것인가.

사무실 없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 ‘디지털 노마드’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다. 프랑스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가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디지털 노마드를 소개한 것이 1998년이지만, 한국에서 디지털 노마드란 여전히 ‘여행 다니며 설렁설렁 일하는 프리랜서’ 정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도유진씨는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족을 심층적으로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물 ‘원 웨이 티켓’으로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등 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신간 ‘디지털 노마드’는 이 영화를 기반으로 쓰인 책이다. 워드프레스(홈페이지 제작 프로그램)를 만든 회사 오토매틱의 창업자 맷 뮬렌웨그를 비롯,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사람 68명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2005년 설립된 오토매틱은 직원 400명에 기업가치가 1조원에 이르는 회사지만 사무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이 전부다. 출퇴근 직원은 20여명, 나머진 전세계 47개국에 퍼져 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무상으로 공개된 소프트웨어로, 다양한 사람들이 개발ㆍ개선에 참여한다)를 만드는 개발자답게 그는 처음부터 원격근무를 생각했다. “각자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왜 굳이 샌프란시스코로 불러와야 하는지, 한 도시에 사무실을 열고 꼭 그 도시에서만 사람들을 채용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보스턴이 아니더라도 멋진 인재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고 저는 이들과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오토매틱의 채용은 채팅과 시험 과제 수행만으로 이뤄진다. 지원자와 면접관 간에는 대면은커녕 음성 통화조차 없다. “채용하기 전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싶지 않은가요?”라는 저자의 질문에 뮬렌웨그는 되묻는다. “인상착의라던가 사교성, 옷매무새 같은 것들을 왜 디자인, 엔지니어링, 관리, 제품 개발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해야 하나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 버퍼의 직원 90여명도 50개 도시에 퍼져있다. 공동창업자 조엘 가스코인의 계산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임대할 경우 최소 3만~5만달러의 월세가 나간다. 버퍼는 이 돈을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팀 리트릿’에 쓴다.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 태국의 방콕,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 등 전세계 멋진 도시에 전 직원을 한데 모아 열흘 간 친목을 다지고 함께 일하는 일종의 워크숍이다. 평소 화상채팅으로만 만났던 직원들은 반갑게 안부를 묻고 맛있는 식사를 한 뒤 PC방을 통째로 빌려 같이 일한다. “원격근무는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업무를 끝내는 데 최적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모두 모여서 회사의 현재 위치와 방향성, 그리고 목표를 공유하고 팀이 뭉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해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자아내지만 지나친 환상은 금물이다. 평범한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 쓴다. 게티이미지뱅크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자아내지만 지나친 환상은 금물이다. 평범한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 쓴다. 게티이미지뱅크

책이 보여주는 풍경들은 내내 환상적이다. 태국, 에콰도르, 대만, 두바이, 모로코의 집은 미국 월세의 반의 반도 안되면서 넓고 쾌적하다. 이들에게 회식, 사내정치, 메이크업, 러시아워는 다른 행성의 이야기다. 버퍼에서 원격근무를 하는 코트니 세이트는 어쩌다 오후 6시에 외출을 했다가 교통체증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러나 저자가 가장 경계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바닷가 해먹에 누워 배 위에 노트북을 펼치고 있으리란 예상과 달리, 디지털 노마드도 직장인과 똑같이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 쓴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저자는 다만 이것이 사회 부적응자들의 일탈이 아니며, 한국이 필연적으로 맞게 될 미래임을 앞서 귀띔하고자 한다. 물론 비정규직에 대한 횡포가 끊이지 않는 이 나라에겐 다른 나라보다 조금 더 먼 미래가 될 수도 있다.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 없이 기존 정규직 모델에서 기업이 부담해야 했던 레거시 코스트(퇴직금, 의료보험 등 기업이 부담하는 유산비용)만 쏙 뺀 기형적인 구조를 먼저 개선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프리랜스 이코노미는 미래가 없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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