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인쇄한 농서 ‘사시찬요’가 경북 예천군에서 발견됐다. 현존하는 ‘사시찬요’ 중 제일 오래된 판본이다.
15일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 학교 BK플러스21사업팀은 최근 예천박물관에 기탁하기로 협약된 ‘남악종택’의 문화재를 정리하던 중 ‘사시찬요’를 발견했다. ‘사시찬요’는 996년 당나라 한악이 편찬한 농서로 1월부터 12월까지 시기별 농법이 기술돼 있다. 중국 최초 농서인 북위의 ‘제민요술’과 송나라 진부의 ‘농서’ 사이에 편찬 돼 농업사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사시찬요’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모두 자취를 감췄다. 1961년에야 일본에서 조선 목판본이 발견됐다. 1590년 경상좌병영(울산)에서 간행된 책이다. 2015년에는 17세기 국내 필사본이 추가로 발견됐다. 중국과 일본에는 남아있는 판본이 전무하다.
이번에 발견된 계미자본 ‘사시찬요’는 1403~1420년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돼 ‘농사직설(1429)’ 이전 조선의 농업기술을 이해하는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이 계미자본에는 1590년 목판본 3월 편에 기술된 ‘종목면법(목화재배법)’이 빠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권희 교수는 “계미자본은 송나라의 판본을 원형으로 삼았고 종목면법은 이후 조선 실정에 맞게 추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사시찬요’는 주로 중국역사서, 문집 등으로 인쇄된 계미자본 중 유일한 과학기술 관련 서적이기도 하다. 계미자는 태종 3년(1403) 만든 조선 최초 구리활자다. 서울대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십칠사찬고금통요 권6ㆍ17(국보 148호),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권4ㆍ5(국보 149호) 등이 계미자로 찍은 책이다. 이미 국보로 지정된 이 책들이 각각 10장 안팎인데 비해 ‘사시찬요’는 100장 분량인데다 보존상태도 비교적 양호해 국가지정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다. 남권희 교수는 “조선시대 농업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는 물론 서지학 측면에서도 활자 서체와 조판법 연구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남악은 임진왜란 전 류성룡과 함께 왜에 통신사로 다녀온 학봉 김성일(1538∼1593)의 동생인 김복일(1541∼1591)의 호다. 울산군수, 창원부사, 성균관 사성, 풍기군수 등을 역임한 인물로 선조가 그의 강직한 성품을 높이 사 문헌비고, 성리대전 등 책을 하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남악종가에는 고서와 고문서 1,946점이 남아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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