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소셜
장대익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ㆍ272쪽ㆍ1만5,000원
2004년 개봉해 1,1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여러모로 훌륭한 영화인데,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진태(장동건)과 진석(원빈)의, 아주 맑디 맑은 하얀 눈동자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와 누구 몸에 언제 어떻게 박힐 지 모르는, 때론 온 몸으로 밀고 들어가 막고 차고 때리고 백병전을 전개해야 하는 참혹한 전장에서 참으로 맑디 맑은 눈망울이라니!
아무리 저 두 남자가 얼굴로 기본은 반쯤 먹고 들어가는 배우들이라곤 하지만, 저렇게까지 하얀 눈망울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경계근무 때문에 하다못해 시뻘겋게 충혈됐어야 하는 건 아닐까. 최소한 장동건과 원빈이 남과 북의 군인으로 갈라져 맞서 싸웠을 때만큼은 눈알 색깔이 맑아선 안 되는 것 아닌가. 많은 돈과 인력을 끌어들여 전장의 리얼리티는 한껏 끌어올렸으면서, 군인의 리얼리티는 왜 내버렸을까.
왜 그럴까. ‘울트라 소셜’, 그러니까 인간은 ‘그냥 사회적’인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초(超) 사회적’인 존재라 강조하는 이 책은 ‘협력적 눈 가설’을 소개한다. 사회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과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다.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사람의 눈은 동공, 홍채, 그리고 공막으로 이뤄져 있다. 공막은 흔히 말하는 우리 눈의 흰자위다. 수십 종에 이르는 영장류의 눈을 비교한 고바야시 히로미 등의 연구에 따르면 영장류 대부분의 공막은 갈색 계열이거나 피부와 비슷한 색깔이다. 언뜻 눈에 띄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하얀, 그리고 옆으로 찢어져 길쭉하고 넓은 공막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생긴 이유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넓고 새하얀 공막은 서로가 서로에게 눈동자의 움직임을 훤히 내비쳐준다. 공막으로 인해 도드라지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보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더 잘 탐색할 수 있다. ‘동공지진’이란 말,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장동건과 원빈의 해맑은 눈동자는 꽃미남 배우를 부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 영화를 연착륙시키기 위한 일종의 유도등이었던 셈이다. 울트라 소셜한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장동건과 원빈의 하얀 눈동자를 용서해야 한다. 두 배우에게 우리의 용서 따위가 대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당연하게도 저자가 용서하는 대상은 장동건과 원빈이 아니다. 침팬지와 고릴라의 눈을, 마치 사람의 눈인 것처럼 하얗고 맑은 공막을 넣어 묘사한 영화 ‘혹성탈출’ 시리즈의 맷 리브스 감독을 용서했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침팬지와 고릴라의 맑고 하얀 큰 눈알 역시, 관객을 배려한 장치다. ‘울트라 소셜’을 강조하는 저자답게, 가장 안전한 해외 사례를 고르는 뛰어난 사회성을 발휘했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 진화의 비밀을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는 습성’이라 요약했다. 책은 이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설명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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