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는 8기통 바이터보 엔진, 476마력, 뒷바퀴굴림, 2개의 문, 4개의 시트 그리고 풍만함 넘치는 관능적인 뒤태. 메르세데스 AMG C 63 쿠페를 시승한 뒤 내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떠다니는 빅데이터 키워드다. ‘삼각별’을 단 이 독일산 머슬카는 넘치는 에너지를 어떻게 주체할 줄 모른다. 하면 할수록 피곤해지는 게 운전인데, 이 차는 알 수 없는 엔도르핀을 뿜어내며 운전자에게 신나는 활력을 선사한다.
사실 AMG C 63 쿠페가 속해있는 D 세그먼트의 고성능 영역 터줏대감은 BMW M3다. 지금의 6기통 터보엔진을 달기 전엔 V8 자연 흡기 엔진으로 400마력이 넘는 시원시원한 출력을 내뿜으며 힘을 과시했다. 마치 레이싱카에 앉아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카랑카랑한 고회전 엔진음은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했다. 날카로운 핸들링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C 63 AMG(현재는 메르세데스 AMG C 63으로 이름 체계가 바뀌었다)로 맞불을 놨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요즘 AMG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직 D 세그먼트에선 BMW M3와 M4엔 안 되지만 성장률과 AMG 전체 라인업의 세분화 속도가 매섭다. 지난해 AMG는 전 세계에서 9만9,235대 팔리면서 45%에 가깝게 성장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1년에 287대에 불과했던 AMG는 지난해 2,057대 팔렸다. 가짓수만 27종이다. 거의 모든 차종이 AMG 버전으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입차등록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메르세데스 벤츠가 국내에 판매한 86가지 차종 가운데 AMG만 30종이 넘는다. C 클래스만 하더라도 세단과 쿠페, 카브리올레로 나뉘고 이는 다시 43, 63, 63 S로 세분화된다. 여기에 네바퀴굴림 시스템인 4매틱을 추가할 수도 있다. 이 중 AMG C 63 쿠페는 BMW M4가 선점했던 고성능 쿠페 시장을 정조준한다.
차를 건네받자마자 운전석에 앉아 시동부터 켰다. “그르렁!” AMG에서 주물럭거린 차는 이때가 짜릿하다. 고이 자는 맹수를 건드려 깨워 같이 놀자고 하는 듯한 느낌이다. AMG C 63 쿠페에는 세단 모델에서 이미 선보인 4.0ℓ V8 바이터보 엔진을 얹었다. 메르세데스 AMG GT의 M178 엔진을 기반으로 만든 M177 시리즈다. 개선된 점이 있다면 두 개의 터보차저가 실린더 뱅크 위에 있지 않고 그사이에 위치해 엔진 구조가 더욱 간결해졌다. 또한, 덕분에 반응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배출가스는 줄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새로운 엔진이 성능은 물론이고 효율도 30% 이상 개선됐다고 전했다. 최고출력 476마력, 최대토크 66.3㎏·m의 힘을 뿜어낸다.
보닛을 열어 엔진룸을 보니 AMG의 문양과 함께 ‘마르셀 베버(Marcel Weber)’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이 엔진을 직접 손으로 조립한 장인의 이름이다. AMG는 모든 엔진을 엔지니어 한 사람이 책임지고 하나씩 손으로 조립한 후 이름을 새겨 넣는다. 자신감과 자부심의 표출이다. 단, 6기통 엔진이 들어가는 AMG 43 모델은 AMG 디비전이 아닌 메르세데스 벤츠가 제작한다. 마치 귀족 가문을 연상시키는 AMG 문양은 밸브 스프링, 캠축 그리고 AMG 엔진이 만들어지는 독일 아팔터바흐(Affalterbach) 지역의 상징인 사과나무를 형상화했다.
AMG C 63 쿠페는 세단과 전혀 다른 맛이다. 지난해 시승했던 C 63 AMG는 경쾌하고 산뜻했다. 문을 여닫을 때도 가볍게 착 감겼다. 달릴 때는 마치 요즘 유행하는 경량 러닝화를 신고 뛰는 기분이었다. 실내도 S 클래스에서나 볼 법한 가죽과 소재로 고급스럽게 치장했다. 그런데 AMG C 63 쿠페는 가고자 하는 노선이 명확히 다르다. 문도 묵직하고 승차감도 머슬카답게 투박하다. 검정과 빨강 옷을 입은 AMG 퍼포먼스 시트도 이 차의 성격을 뚜렷이 보여준다. C 클래스 쿠페와도 문과 지붕 등의 모양새만 같을 뿐 전체 실루엣은 AMG C 63 쿠페가 더 우람하다.
이 차의 백미를 꼽는다면 배기음이다. AMG 내부엔 분명히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엔지니어가 있을 것이다. 배기 시스템은 ‘다이내믹 셀렉트’ 모드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된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 두고 가속 페달을 꾹 밟으면 머리 뒤에선 ‘개틀링 기관총의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진다. 발에 힘이 들어갈수록 박자는 더욱 빨라지고, 운전자의 심장도 요동친다. V8 엔진의 포효는 주행 모드에 맞게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간다.
AMG C 63 쿠페는 정지상태에서 100㎞/h까지 4초에 주파한다. C 63 세단보다 1초 더 빠른데, 이는 폭이 더 넓은 타이어와 짧은 리어 액슬 비율 덕분이다. 국내에서 최고 속도는 250㎞/h에서 제한되지만, 해외에선 ‘AMG 드라이버스 패키지’를 적용하면 290㎞/h까지 올라간다.
이름도 긴 ‘AMG 스피드시프트 MCT 7단 스포츠 변속기’의 움직임은 망설임이 없고 적확하다. 자동 모드에서건 시프트 패들을 사용하는 수동 모드에서건 기어간 움직임에 빈틈이 없다. 자동보단 시프트 패들을 딸각거리며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게 더 즐겁다. 7단에서 주행 중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선택하면 기어는 5단으로 내려가며 큰 토크를 유도하는데, 이때도 울컥거림 하나 없이 자연스럽다. 싱글 클러치를 사용하는 MCT(Multi clutch Technology) 방식은 구조상으로 봤을 때 듀얼 클러치 방식보다 빠르진 않으나 실제론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유압으로 힘을 전달하는 토크 컨버터 대신 습식 다판 클러치 덕에 기어가 맞물리는 느낌은 더 단단하다.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서스펜션과 하체는 높은 속도로 쫀쫀하게 코너를 돌아나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코너링할 때마다 지금 달리고 있는 이곳이 트랙이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앞 서스펜션은 네 개의 링크가 단단히 붙들고 있고, 뒤 액슬은 쿠페 전용으로 새롭게 개발됐다. 멀티 클러치와 두 개의 스러스트 링이 들어간 기계식 LSD(리미티드 슬립 디퍼런셜)는 구동력이 필요한 휠에 토크를 분산시켜 언제나 적정한 마찰력을 유지한다. 또한, AMG C 63 쿠페에 최적화된 스티어링 너클과 폭넓은 타이어는 높은 횡가속도에도 차를 땅에 끈끈하게 붙여준다. 타이어는 콘티넨탈의 19인치 콘티스포트콘텍트 5P(앞 255/35 ZR, 뒤 285/30 ZR) 레이디얼 타이어를 달았다.
메르세데스 AMG C 63 쿠페의 가격은 1억2,200만원이다. 경쟁 모델로 정조준하고 있는 BMW M4보단 높은 가격이지만, 제원에 드러난 숫자만 봐도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가격이다. 세그먼트는 다르지만 같은 가격의 머슬카로 캐딜락 CTS-V도 떠오른다. 이 차 역시 V8 엔진을 달았지만, 배기량은 6.2ℓ에 슈퍼차저를 달아 최고출력 640마력이라는 감당 못 할 괴력을 뿜어낸다. 1억원 초반대에서 럭셔리하고 신나는 머슬카를 찾는다면, AMG C 63 쿠페만 한 차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아직도 배기 플랩에서 터져 나오는 “빠방 빠바방” 소리가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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