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은 특히 국민 체감도 높아
전문성 갖춘 인사 조속히 선임돼야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오후 출입기자들에게 “14일 정은보 부위원장 주재로 가계부채 간담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긴급 공지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새 정부 주요 인사들이 연일 가계부채 우려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주무부처인 금융위가 뭔가 대응방안을 제시할 거란 기대가 자연히 따랐다.
하지만 금융위는 불과 5시간 만에 간담회 일정을 취소하고 말았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지 배경이 궁금했지만, 금융위는 “당장 특별한 대책을 발표할 게 아니어서 간담회를 취소했다”고만 해명했다.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각 금융업권 협회장까지 참석하는 정부 주재 간담회가 이렇게 급하게 취소되는 건 드문 일이다. 더구나 금융위가 이날 공개한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액이 올 들어 최고를 기록했을 만큼, 가계부채의 상황도 전혀 한가롭지 않다. 그런데도 금융위는 “8월 발표될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빈틈없이 준비하겠다”는 원론 수준의 입장만 내놨다. 하루 전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겠다”는 초강력 메시지를 시장에 보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금융위가 이날 간담회를 급하게 취소한 건 자칫 새 정부 정책과의 ‘엇박자’를 우려했기 때문이란 후문이 들린다. 신임 금융위원장 인선이 지연되면서 각종 금융 현안에 대한 이렇다 할 정책 결정도 미뤄지고 있는데, 전 정권부터 이어지는 부채 대책을 새삼 반복하는 모양새가 부담스러웠을 거란 해석이다.
사실 당사자인 금융위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경제 공약이었던 저소득층 채무탕감, 금융소비자 보호 등은 모두 국민의 일상 생활에서 체감도가 높은 정책들이다. 기업 구조조정을 비롯해 금융위가 해결해야 할 현안도 산적해 있다. 그런데 그 해결방안을 주도하고 결정할 수장이 아직 감감 무소식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일각에선 이런 실상을 두고, 새 정부가 금융위원장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 정도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실제 그간 하마평에 오른 사람만 수십 명인데, 그 가운데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도 적지 않다.
출범 초기 인사로 “신선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새 정부가 이런 불신을 사지 않으려면 금융위원장 인선을 더 늦춰선 안 된다. 대우조선해양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한 건 정부가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다만 참신함만 앞세워 전문성을 의심 받는 인사를 지명하는 우도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지난 정부에서 파격이란 명분으로 금융위 부위원장, 산업은행 회장 등에 입성했던 인물들의 말로를 보면 더욱 그렇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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