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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가구 수백명이 잠든 시간에… 희생자 갈수록 늘어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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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가구 수백명이 잠든 시간에… 희생자 갈수록 늘어날 듯

입력
2017.06.15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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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분 만에 건물 전체가 불기둥

최소 12명 사망ㆍ70여명 병원 이송

대피 못한 거주자도 상당수 추정

건물주, 주민단체 화재 경고 묵살

“불 나면 집안 대기” 통보 받기도

경찰, 테러 등 모든 가능성 조사

14일 영국 런던 서부 고층 아파트 건물 전체가 원인 모를 화재로 화염에 휩싸여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14일 영국 런던 서부 고층 아파트 건물 전체가 원인 모를 화재로 화염에 휩싸여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Towering Inferno(대규모 고층 화재)”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14일 런던에서 발생한 고층 아파트 화재 속보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1974년 개봉한 재난영화의 고전 ‘타워링’처럼 24층짜리 건물은 불과 몇 시간 만에 다 타버렸다. 아파트 거주자 수백명이 잠든 새벽 시간대 화재가 일어나 6명(15일 오전 2시 현재)이 숨지는 등 인명피해도 컸다.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해당 건물이 수년 전부터 화재 경고음을 묵살한 정황이 드러나 ‘예고된 인재(人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런던 서부 래티머로드에 위치한 24층(개조 전 27층) 규모의 고층 아파트 ‘그렌펠 타워’ 2층에서 불이 시작됐다. 불은 금세 꼭대기 층까지 번져 수십여 분 만에 건물 전체가 거대한 불기둥으로 변했다. 소방당국은 즉시 소방차 40여대와 소방관 200여명을 동원해 입주민들을 대피시키고 화재진압에 나섰지만 화력이 워낙 강해 진화에 애를 먹었다. CNN과 BBC 등 세계 주요 방송들은 붉은 화염으로 휩싸여 2001년 9ㆍ11 테러 당시 쌍둥이 빌딩 붕괴를 떠올리는 듯한 화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이날 오전 5시쯤 날이 밝으면서 큰 불길은 잡혔으나 고층 아파트는 외벽이 검게 그을리고 오전 내내 연기가 계속 새어 나오는 등 처참한 형체를 드러냈다. 주요 내ㆍ외부 골조가 전소돼 건물이 무너져 내릴 가능성도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붕괴 위험 탓에 정확한 화재 원인과 인명피해 규모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이미 다수의 사상자가 확인됐다. 스튜어트 쿤디 런던경찰청 국장은 “12명의 사망자가 나왔으며 수색이 진행되면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생명이 위급한 부상자만 20여명이며, 화상과 유독가스 흡입 등으로 다친 70여명은 인근 6개 병원으로 분산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불이 집안에 사람이 많은 한밤중 일어났고, 입주민도 120세대나 돼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실종자가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중대 사고(major incident)’를 발령하고 “진화와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 경찰은 테러와 방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화재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목격자들이 전한 참상 역시 대규모 인명피해 우려를 키우고 있다. BBC는 “건물 잔해가 떨어지고 유리창이 깨지면서 폭발음이 계속 들리고 있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한 목격자는 미국 CNN에 “말 그대로 불에 타 죽어가는 남성을 봤다”고 했고, 현지 방송 진행자는 “화재 현장에서 100m 떨어져 있는 데도 재를 뒤집어 썼다”고 말했다. 또 일부 주민은 옥상으로 올라가 토치와 휴대폰 불빛으로 구조 신호를 보내는가 하면, 침대보로 대피용 밧줄을 만드는 모습도 목격됐다.

화재 원인과 관련, 건물 부실 관리로 인한 참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1974년 지어진 그렌펠 타워는 서민층이 주로 거주하는 공공임대 아파트이다. 2015년 1,000만파운드를 들여 전면적인 보수 공사에 들어가 지난해까지 건물 외장재와 공공난방 설비 등을 보강했다. 하지만 입주민 단체 ‘그렌펠액션그룹(GAG)’은 지난해 11월 자체 웹사이트에서 “아파트 거주 밀도가 높아 이대로 가면 대형 사고, 특히 화재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2013년에도 배선 불량이 원인이 된 화재를 주민회가 조사하려 했지만 소유주인 켄싱턴ㆍ첼시구청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GAG 관계자는 “비상탈출 장비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며 “심지어 불이 날 경우 ’집 안에 머무르라(stay put)’는 관리업체의 통보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화재 당시 경보가 울리지 않아 주민 대피가 늦어졌다는 증언도 속속 나오고 있다. 4층에 사는 한 남성은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누군가 모든 현관문을 두드려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화재 경보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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