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원장 취임 기자회견
“다음주 초 재벌개혁 방안 공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진행”
‘투자 위축’ 세간 우려 불식 포석
“가맹점 등 乙의 눈물 닦아줄 것”
경제약자 권익보호 의지 피력
14일 취임한 김상조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이 직원들에게 “공정위 출신 ‘전관(전직 간부)’ 및 변호사와 개인적 만남을 갖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공정질서 확립에 한 치의 후퇴도 없을 것”이라며 강력한 법 집행을 예고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사회와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조직 기밀이 유출되는 수준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며 “공정위 전직(일명 OB)이나 로펌 변호사와 업무시간 외 접촉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불가피한 경우엔 반드시 (만났다는) 기록을 남기라”고 덧붙였다. 공정위 출신을 고문 등으로 영입한 로펌과 현직 공정위 직원들 간의 유착을 경계한 발언이다. 김앤장ㆍ광장ㆍ태평양ㆍ세종ㆍ화우 등 국내 5대 로펌의 공정거래팀에는 전직 공정위 간부 52명(5월말 기준)이 고문 등으로 활동 중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취임 후 기자회견에서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크게 재벌개혁과 갑을관계 개선 두 가지”라며 선전포고를 날렸다. 김 위원장의 최우선 과제는 재벌개혁이다. 그는 앞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미 개혁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현행법을 엄격하게 집행해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 일가의 사익추구 행위를 근절하되, 개혁 대상은 상위 4대 그룹(삼성ㆍ현대차ㆍSKㆍLG) 등으로 좁혀 시장 충격은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당장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잡아 낼 전담조직인 ‘조사국(기업집단국)’ 부활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조사국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전담하다가 2005년 말 폐지됐다. 일감 몰아주기를 옭아 맬 ‘족쇄’도 더욱 단단해질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상이 되는 총수 일가의 상장사 지분율 요건을 현행 30%에서 20%로 낮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 경우 현대글로비스ㆍ이노션 등 총수일가 지분율을 29.9% 이하로 낮췄던 재벌 계열사들도 다시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김 위원장은 “(재벌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다음주 초 공개할 것”이라고도 예고했다.
다만 김상조식 재벌개혁은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이날 “대통령께 ‘재벌개혁은 검찰개혁처럼 하기는 어렵다’고 말씀 드렸다”고 전했다. “기업 정책은 이해관계자가 많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 몰아치는 방식으로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일관되며, 예측 가능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벌개혁 드라이브가 자칫 기업 투자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가맹ㆍ하도급ㆍ대리점 등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도 김 위원장의 당면 과제다. 그는 “우리 사회가 공정위에 요구하는 바는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오남용을 막고 중소기업, 가맹점주 등 ‘을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것”이라며 갑을 관계 개선에 적극 개입할 뜻을 천명했다. 향후 가맹점에 대한 보복금지 규정을 신설하고, 가맹점 사업자에 단체구성권을 보장해 가맹본부에 대한 사업자들의 협상력을 높이는 등 각종 제도 개선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김상조식 개혁의 성공 여부는 결국 대국회 관계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현행 하도급법 등만으로 우리 사회 ‘을’들이 제기하는 민원을 해결하기는 어려움이 있다”며 “진정성을 갖고 국회의 의견을 경청하고 논의를 이어가는 자세를 갖겠다”고 몸을 낮췄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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