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서 열린 英-佛 정상회담서
마크롱 “아직 문은 열려 있다”
조기총선 패배 후 출구 못찾는
메이 총리에 빠른 결단 압박
영국과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공식 협상 개시가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테리사 메이 정부의 총선 패배로 인한 ‘브렉시트 불확실성’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브렉시트 협상을 담당하는 신설부서 브렉시트부는 혼란 상태에 빠졌고, EU의 고위 관계자들은 “영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며 영국을 압박했다. 13일(현지시간) 메이 총리를 마주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브렉시트)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유럽의) 문은 열려 있다”고 말하며 브렉시트의 방향성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영국에 직격탄을 날렸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브렉시트 협상(19일 개시)을 눈앞에 두고 협상을 준비하는 브렉시트부(DExEU)에서 이번 주만 차관 4명 중 2명이 물러났다. 웨일스지방에서 EU 탈퇴운동을 주도하던 데이비드 존스는 해고됐고, 의회 브렉시트법안 담당인 조지 브리지스는 “정책적인 이유로 브렉시트가 더 이상 잘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스스로 떠났다.
지난해 EU 탈퇴 운동을 총괄한 도미닉 커밍스는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브렉시트부 상황은 엉망진창이라고 외치고 있다”며 “리더십을 다잡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브렉시트에 앞서 총의를 모아야 할 의회는 조기 총선 패배를 수습하고 연정을 구성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다. FT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메이 정부는 탈퇴 선언 이후 협상 개시일까지 있었던 시간의 80%를 총선에 낭비했다”며 “최악의 브렉시트를 향해 영국이 몽유병 상태로 걸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EU 관계자들도 영국 측 불확실성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기 베르호프스타트 유럽의회 브렉시트 협상대표는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영국의 입장이 3월 29일 탈퇴 선언 당시 보낸 서신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총선으로 인해 변화가 있는지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 EU측 외교관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영국은 회담 진행 방식은 둘째치고 자기들이 정확히 무엇을 바라는지조차 모른다”며 EU 관계자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도 메이 총리에게 ‘굴욕’을 안겼다. 그는 메이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 도중 ‘문이 열려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빠른 결단을 촉구했다. 브렉시트가 영국 내에서조차 자칫 정치적 정당성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을 강조하면서 메이 총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인 모습이다.
14일 발생한 런던 고층 아파트 화재로 민주통합당(DUP)과의 연정 협상이 잠정 중단됐지만 메이 총리는 협상 지속을 공언하는 등 총리직 자체는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당 내 총리 교체설 역시 대안으로 나올 인사가 마땅치 않아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이다. 그러나 제1야당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13일 하원 총리에 대한 질의(PMQ)에서 “메이 총리의 새 정부 출범이 어렵다면 노동당은 국가 이익을 위해 강하고 안정적인 지도력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메이 총리를 비꼬았다. 메이 총리는 조기총선 실시를 선언하면서 “브렉시트 협상을 위해 강하고 안정된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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