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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무가 산다

입력
2017.06.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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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돌매화. 풀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나무다. 다 자라도 키가 2㎝에 불과하다.
한라산의 돌매화. 풀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나무다. 다 자라도 키가 2㎝에 불과하다.

며칠 전 제주 한라산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세바람꽃’이 소백산국립공원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단순히 희귀식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빙하기 식물로 한반도의 자연사와 기후변화에 관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끈다. 보도에 따르면 연구진은 한라산과 소백산 세바람꽃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서식지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와 빙하기 이후 세바람꽃이 격리된 시기 등을 조사해 한반도의 자연사와 기후변화에 관한 연구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빙하기와 주빙하(周氷河, peri-glacial)지역의 혹독한 기후환경을 피해 보다 나은 서식지를 찾아 남쪽으로 이동해 정착한 식물의 후손을 ‘빙하기 유존종(遺存種, relict species)’이라 한다. 환경의 영향을 받아 이동 또는 변화하는 사이에 섬이나 높은 산, 계곡 등에 격리돼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생물을 일컫는 말이다.

시로미.
시로미.
바위 위에 붙어 사는 시로미.
바위 위에 붙어 사는 시로미.
들쭉나무.
들쭉나무.
눈향나무.
눈향나무.

한반도는 북극권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1만5,000∼1만8,000년 전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 빙하기에 극지방의 식물들이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이동해 정착한 핵심 피난처였다. 그 식물들이 빙하기가 끝난 후 고산지대에 남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때문에 빙하기 유존종을 ‘살아있는 식물화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눈잣나무, 눈향나무, 찝방나무, 눈주목, 돌매화나무, 시로미, 들쭉나무, 월귤, 홍월귤, 노랑만병초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빙하기 유존종은 한라산을 비롯해 지리산과 설악산 정상 부근에 자라는 키 작은 식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한반도 자연사를 알려 주는 열쇠이자 생물종 다양성 측면에서도 소중한 자원이다. 특히 한라산의 높은 지대에 자라는 돌매화나무, 시로미, 들쭉나무 등 극지고산식물은 과거 빙하기에 제주도와 한반도, 중국대륙이 서로 연결됐었다는 ‘연륙(連陸)설’을 증명하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당시는 현재보다 해수면이 약 150m가량 낮아 제주도가 한반도와 중국 대륙, 일본, 타이완과도 연결된 내륙이었다는 학설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한라산 정상부 일대에만 분포하는 식물들이다. 돌매화나무는 북반구 툰드라지대에, 시로미는 일본과 중국 동북지방, 사할린, 캄차카반도, 동시베리아에 분포하지만, 한반도에서는 백두산과 한라산 등지에서만 자란다. 들쭉나무도 백두산에는 흔하지만, 한라산에는 극소수 개체만 존재한다.

자라는 환경을 보면 빙하기 유존종의 질긴 생명력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백록담의 척박한 바위에서 자라 암매(岩梅)라고도 불리는 돌매화나무가 대표적이다. 얼핏 풀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나무로, 거센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해 가는 가지에 잎이 빽빽하게 달려있고 한군데 뭉쳐서 자라는 특성이 있다. 국가에서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으로 지정한 아주 귀중한 식물이다. 다 자라도 키가 2㎝정도에 불과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무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시로미 또한 다르지 않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라산 아고산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지구온난화와 조릿대의 기승으로 지금은 바위 위에서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토양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라다가 생존경쟁에서 조릿대에 밀려 바위로 삶터를 옮긴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한라산의 빙하기 유존종은 모두들 최고와 최대를 지향할 때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작은 키를 택했고, 다른 식물들이 비옥한 환경을 찾을 때 척박한 바위틈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키웠다. 빙하기까지 이겨내고 수 만 년간 생존해온 식물들이 최근 지구온난화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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