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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만 둔 노부부 “적적해도 손주 육아부담 없어 위안”

입력
2017.06.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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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이 처가 근처가 편한 이유

“사위는 그나마 대접받을 수 있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70대 홍모씨 부부의 서울 구로구 자택은 항상 적적한 편이다. 결혼해서 손주를 둔 42세, 40세의 아들 가족이 있지만 두어 달에 한번, 1년에 5,6번 정도만 홍씨 부부를 찾는다. 설과 추석, 부모님 생신, 어버이날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처음엔 아들이 자주 찾지 않는 것에 섭섭해 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홍씨 부부의 아들들은 본가와 떨어져 처가 중심으로 생활한다. 대기업 차장인 큰 아들은 2003년 결혼해 인천에 신혼집을 얻었지만 2006년부터 처가를 따라 이사를 다녔다. 큰 며느리는 딸(13)을 낳자마자 직장을 그만 둬 직접 육아를 도맡긴 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의지할 곳이 필요했는지 친정 가까운 집을 원했다. 본가 근처에 살면서 육아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을까. 홍씨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시댁을 어려워하는 부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요. 차라리 부인 마음 편한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나도 부인에게 시달리지 않아 마음이 가볍습니다.”

홍씨 장모가 홀로 사는 서울 은평구 처가는 주말이면 늘 북적북적하다. 장모는 2남3녀를 뒀는데, 이중 홍씨 부인을 포함한 3녀 가족이 모두 처가에서 차로 5분 거리 안에서 모여 산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장모님과 3녀 가족이 전부 모여 식사를 하고 함께 여행도 다닌다. 홍씨는 “최근엔 바빠서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부서 이동 전에는 처가 식구들과 여행도 자주 다녔다”면서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 친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온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혈육인 친동생보다 동서, 처형들과 더 가깝게 지내고 있다. 홍씨는 “동생 역시 자신의 처가 근처인 서울 광진구에 살며 처가와 가깝게 지낸다”고 했다.

아들을 처가에 내준 노부부들은 어떨까. 외롭다는 단점도 있지만 육아 부담이 없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외동 아들이 처가 근처로 이사를 가 한 달에 한두번 아들 집을 찾는 A(58ㆍ여)씨는 “손주가 아무리 귀여워도 체력이 달려 매일 돌보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육아 지원을 부탁 받으면 부담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중소기업 대리 최준영(33ㆍ가명)씨 가족도 마찬가지다. 본가에도 자주 가려고 노력하지만 한 달에 한번 찾기도 벅차다. 2013년 결혼한 최씨는 장인ㆍ장모의 권유로 처가(서울 성북구 정릉동) 근처인 강북구 수유동에 집을 얻었다. 서울 안에서는 본가인 인천과 가장 거리가 먼 동네다. 지난 4월엔 아예 처가와 걸어서 5분 거리로 집을 옮겼다. 장인ㆍ장모가 생후 13개월 된 최씨네 쌍둥이 자녀를 자주 돌봐줘, 처가엔 거의 출퇴근을 하다시피 한다. 처가가 지리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한, 딸과 사위가 처가 근처에 와서 사는 것이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여성의 목소리가 커져 시댁(본가)을 멀리하고, 남성은 가부장적 권력을 잃어 마지 못해 처가 근처에 사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결혼 전 서울 강서구에서 부모님과 살다가 2014년에 결혼해 처가 근처인 서울 잠실에 신혼집을 얻은 은행원 유상진(31ㆍ가명)씨는 “여성들이 시댁을 어려워하고 남성들은 처가를 편하게 여기는 것은, 여전히 사위들은 처가에서 그나마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장인ㆍ장모가 ‘교회에 나가라’는 것 외엔 나에게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아 처가 근처에 살아도 부담이 없다”고 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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