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노조인 일본자치체노동조합총연합(자치로)은 ‘비정규직 처우개선은 노조의 책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10년부터 도서관, 보육원 등 지자체 소속 기관의 업무에 대해 순차적으로 직무 평가를 시작했다. 특정 직무를 구성하는 요소(지식ㆍ부담ㆍ책임ㆍ환경 등)를 나눈 뒤 난이도 별로 업무의 등급을 구분했는데, 직무 평가 결과 같은 난이도의 일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많게는 4배 이상 벌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치로는 이를 근거로 사측인 지자체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이런 운동의 성과로 일본 중앙정부는 2014년 지자체에 ▦고용 형태가 아닌 근무 실태에 따른 수당 지급 ▦법정 최저기준에 못 미치는 비정규직 처우개선 ▦비정규직 직원의 고용 불안이 대민 서비스에 미치는 나쁜 영향 시정 등을 지시했다. 자치로는 2013년 다른 노조가 참고할 수 있도록 직무평가를 위한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비정규직이나 간접고용, 저임금은 비단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동ㆍ인권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서유럽 국가들 역시 세계적인 경기 둔화로 증가한 비정규직과 간접고용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이런 임금 격차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특히 노조가 이런 움직임에 선봉에 선다.
독일의 종업원 평의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13일 “파견업체의 저임금이 큰 문제인 독일은 기업별로 있는 종업원 평의회가 중심이 돼 파견 근로자와 정규 근로자가 동일임금을 받을 수 있게 사측과 협상한다”면서 “노조가 직접 파견업체를 만들어서 공정한 임금이 지급되게 만드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독일은 그간 법정 최저임금이 없었다가 2015년부터 도입됐는데, 여기에도 노조의 역할이 컸다. 저임금, 비정형 일자리가 늘어나자 독일 서비스연합노조와 금속노조 등이 정치권을 압박한 것이다. 최저임금 도입의 최대 수혜자는 정규직 조합원이 아닌, 최저임금 미만의 저임금에 시달리던 파견업체 근로자들이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산별노조가 아닌 개별 기업노조 중심으로 노조 활동이 이뤄지는 일본의 노조도 임금 격차 해소 등 비정규직 보호에 매우 적극적이다. 일본의 유명 가전업체 켄우드 그룹은 2000년대 초반 경영 상태가 악화하자 그룹 전체 근로자의 임금을 15% 삭감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특히 자회사 폐지ㆍ합병으로 자회사 소속 근로자들의 피해가 막심했다. 이때 총대를 메고 나선 게 핵심 계열사인 음향기기 전문업체 JVC켄우드의 노동조합이었다. 자회사 별로 따로 있던 노조를 단일화하기로 했고, 단일 노조는 비정규직이나 자회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특히 노조는 직원의 70%가 계약직이던 무노조 자회사에 노조 지부를 새롭게 조직해 노조가 직접 최저임금 인상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또 6개월 이상 고용된 계약직 사원도 노조원이 될 수 있도록 사측과 협정을 맺었다.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본은 원청ㆍ대기업 노조가 무분별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결국 그 비용이 하청업체 등으로 전가되거나 품질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노사 모두 철저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본 노조는 원청 하청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생산 공동체로 인식해 원ㆍ하청 간 임금격차 확대를 노조가 직접 억제한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1950년대부터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주도로 ‘연대 임금’을 도입했다. 연대 임금은 기업의 수익성과 무관하게 동일노동에 대해 동일임금을 주는 제도인데, 이를 통해 고임금-저임금 근로자의 격차가 거의 제로(0) 수준으로 줄어 들었다. 최근 들어 연대 임금의 전통이 약해지긴 했지만 ‘수익성이 높은 기업의 지나친 임금인상을 억제하면서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높이자’는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평가다.
이런 노조의 노력 유무는 격차 통계로 확인된다. 한국의 임금 10분위 배율(상위 10% 근로자 임금을 하위 10% 근로자 임금으로 나눈 값)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5배)을 크게 웃도는 4.8배에 달한다. 상위 10%가 하위 10% 근로자의 임금의 4.8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이는 2014년 기준 OECD에서 34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큰 격차로 미국(5.0배) 이스라엘(4.9배) 정도만 우리나라보다 격차가 컸다.
선진국들은 기업별ㆍ고용주 별로 동일노동에 얼마만큼의 임금을 지급하는 지가 투명하게 공개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요 선진국들은 비슷한 업무에 대해 기업 단위를 넘어서는 횡적인 비교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한국은 비슷한 업무에 임금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기준이 전혀 없다”면서 “지역별ㆍ업무별로 세세하게 임금 통계를 제시해 기업이 임금 격차를 줄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미국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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