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없는사회 상반기 조사 결과
광주 14개 고교ㆍ44개 학원 적발
시교육청 조례 개정 난색 비판도
‘합격, 서울대 ○○○, 고려대 △△△… 전남대 XXX, XXX…'
10일 오후 광주 남구 봉선동 학원가에 위치한 한 입시학원 건물 2층 복도 벽에는 명문대 합격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적힌, 작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주말을 이용해 자녀의 학원수강 상담을 마치고 나오던 한 학부모는 “나도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려고 학원에 보내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대학에 따라 학생들의 등급을 매기는 이런 행태가 언제쯤 사라질런지 모르겠다”고 씁쓸해 했다.
학생들의 인권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선 고교와 학원들의 특정 대학교 합격자 홍보물 게시 행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학교와 학원에서 특정 대학 합격 결과를 게시하지 못하게 지도ㆍ감독해야 한다고 각 시ㆍ도교육감에게 권고해왔지만 별무효과다.
실제 학벌없는사회를위한광주시민모임(이하 학벌없는사회)이 올해 상반기 광주지역 일선 학교와 학원 등을 상대로 특정 대학 합격자 홍보물 게시 실태 조사를 한 결과, 14개 고교와 44개 학원이 홈페이지와 현수막, 웹 홍보물 등으로 합격 사실을 알렸다. 학벌없는사회는 이에 따라 광주시교육청에 해당 학교와 학원을 지도ㆍ감독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특정 대학 합격자 홍보 게시 행위가 입시경쟁과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진로선택을 막는 학력차별 행위로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교육당국의 지도ㆍ감독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특정 학교 합격자 홍보물 게시를 규제할 마땅한 근거가 없는 데다, 시교육청도 관련 조례 개정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광주시의회는 2015년 학원들의 특정 학교 합격 현수막 게시를 규제하도록 광주시 학원의 설립ㆍ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시교육청이 실효성 문제 등을 들어 난색을 보여 사실상 무산됐다. 하지만 이미 서울시의회와 전북도의회가 관련 조례 개정을 통해 학원들이 수강생 이름과 진학 학교 등을 적은 현수막을 건물 외벽에 거는 것을 규제하고 있어 광주시교육청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벌없는사회는 이런 특정 대학 합격자 홍보가 명문학교 진학 성과를 학교 교육의 성과로 인식하는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악습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이 단체는 관계자는 “소수 졸업생의 특정 학교 진학 성과를 학교 교육력의 결실인 것처럼 내세우는 얌체 같은 셈법은 학교 현장에서 이제 사라져야 한다”며 “명문대 합격자 현수막은 명백한 성적차별로 학생은 물론 학부모, 교사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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