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 3개동 규모 시설 추진에
기존 상인들 시민단체와 반발
서울시 보류 결정 중재안 내놨지만
지역상생 TF는 평행선만 달려
“부지 4년째 방치… 불편 더 못참아”
주민들 쇼핑몰 찬성 서명운동
9일 찾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출구로 나와 빌딩 숲에 들어가기 전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공터 세 곳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한 눈에 봐도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쳐 놓은 울타리임을 알 수 있지만 공사의 개요도, 차량이나 인부가 드나든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4년 이상 방치된 울타리 내부는 풀만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도로변 한 귀퉁이는 화물차와 어린이 통학버스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오모(63)씨는 "울타리만 쳐 있는 것도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4년 넘게 방치된 부지, 서울시에 소송 건 롯데
방치된 이 부지의 주인은 국내 유통 대기업인 롯데쇼핑이다. 2013년 4월 서울시로부터 이곳 상암동 일대 부지 3개 블록 2만644㎡를 1,972억원에 사들였다. 롯데쇼핑은 이 자리에 백화점과 대형마트, 공연장, 영화관, 업무시설 등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롯데가 처음 서울시에 제출한 계획안에 따르면 지하 7층~지상 11층 건물 2동과 지하 7층~지상 19층 규모의 건물 1개동을 각각 지어 구름다리로 연결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쇼핑몰은 올해 완공 예정이었다.
기초 지자체인 마포구에서 계획 승인을 받은 건 계획보다 늦어진 2015년 5월. 하지만 두 달 뒤 지역상인들과의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서울시가 보류 결정을 내렸고, 지난해 서울시가 ‘경제민주화 도시 서울’을 선언하면서 ‘올스톱’ 상황이 됐다. 대형마트나 복합 쇼핑몰의 건축 허가 전 기존 상인들과의 상생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면서 착공을 기약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롯데쇼핑 측은 결국 지난 4월 서울시를 상대로 '서울시 도시계획 심의 미이행에 따른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시가 상암동 일대 부지를 판매시설용도로 팔아놓고 허가를 내주지 않아 경제적인 손실을 입고 있다는 이유다.
서울시 "반경 1㎞ 이내 30% 매출 감소"
서울시가 쇼핑몰 건축 허가 전 상생 방안을 마련토록 한 것은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서울시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연구산학협력단에 의뢰해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 사이 진행한 '마포구 대규모 점포 개설에 따른 상권영향조사'에 따르면 복합 쇼핑몰 입점지 반경 1㎞ 이내의 상점 매출은 30.8%, 2㎞와 3㎞ 범위의 상점 매출도 각각 22.9%, 21.3%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지난 2월 마포구 50개 시민단체와 함께 ‘상암동 롯데복합쇼핑몰 반대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윤성일 대책위 공동대표는 “상암동 롯데쇼핑몰이 입점하면 마포구의 지역경제와 골목상권이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개발 안건을 보류시킨 직후 롯데와 지역상인회의 중재를 위해 'DMC 롯데 쇼핑몰 관련 지역상생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지난달까지 13차례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롯데와 지역 상인들의 의견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서정래 전 망원시장상인회장은 “복합쇼핑몰은 단순히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들어오는 수준이 아니라 휘트니스센터, 차량관리 등 지역 상권의 모든 업종을 아우르기 때문에 그 파급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쇼핑몰이 들어서는 3개 블록 중 1개 블록은 백화점, 매장이 들어서지 않는 비(非) 판매시설로 한다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반면 롯데측은 3개 블록을 연결하지 않는 것은 사업 계획과 맞지 않다며 이를 거부하고, 대신 판매 시설을 전체의 70%로 제한하겠다며 맞섰다.
불만 커지는 상암동 주민
논의가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하면서 이곳 주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마포ㆍ은평 지역 주민들은 최근 ‘서부지역 발전 연합회’를 만들고 쇼핑몰의 착공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4년째 쇼핑몰 부지가 울타리로 둘러싸인 채 방치되면서 더 이상 불편을 감수할 수는 없다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상암동에 2009년부터 거주하고 있는 박모(42)씨는 “마포구에는 변변한 백화점이 하나 없어 쇼핑몰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기대했지만 허가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면서 “쇼핑몰과 시장은 취급 품목 자체가 다른데 서울시는 시장 상인들의 의견만 듣고 쇼핑몰 입점을 원하는 주민들의 요구는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생 방안 마련을 차일피일 늦추는 롯데 측을 향한 불만의 목소리들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주민 김모(45)씨는 “대기업의 탐욕이 지역의 중요 부지를 흉물로 방치토록 만들고 있는 셈”이라며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유통업체와 지역상인, 나아가 지역 주민까지 복잡하게 얽힌 쇼핑몰 설립을 둘러싼 갈등은 상암동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산 연제구, 경기 부천 등 전국 곳곳에서 골목상권을 둘러싼 갈등이 진행형이다.
이들은 새 정부의 정책 변화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골목 상권을 확실히 살리겠다는 지원 대책은 대통령 후보시절 약속한 공약으로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과연 이런 갈등을 겪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까지 이런 골목상권 지원책이 신속하게 나올 수 있을지, 또 다른 갈등을 낳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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