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극은 단순히 과거의 일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한 배우가 해당 작품을 선택했다는 것은 역사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를 자신의 신념으로 표현해 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배우 이정재는 최근 ‘암살’ ‘관상’ 등 시대극을 꾸준히 선택하고 있다.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 역사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이번엔 임진왜란 당시 돈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군역을 치른 천민들의 이야기를 그린 ‘대립군’이다.
“나도 어쩌다 이렇게 시대극만 찍게 됐는지 모르겠다.(웃음) 역사는 작은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다 보면 힘이 생기더라. 힘 있는 스토리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은 더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지금 시대 이야기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작품도 그런 면에서 재밌는 시나리오였다.”
특히 이번 작품은 촬영 기간 내내 국정농단 사태와 겹쳐 있어 감독과 배우들의 신념을 더 표출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가 나왔을 당시엔 이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온전히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촬영 중간에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고 촬영 끝날 때쯤엔 탄핵이 확정되면서 자연스럽게 감독과 배우들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회의를 많이 해야 했다. 현재 정치적 시류에 우리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잘 맞는 것인가 생각했다. 이야기 구성과 인물 간의 관계성을 보면 현실과 다르지 않다. 토우가 처한 상황에 많이 공감하실 것이다.”
이정재가 연기한 대립군의 수장 토우는 영화 초반 “나라가 망해도 우리 팔자는 안 바뀌어”라고 말한다. 지금 있는 왕이든 또 다른 왕이 세워지든 천민의 운명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하지만 극이 흘러갈수록 그는 광해군이 좋은 군주가 될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는 다른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을 따른다.
이처럼 ‘대립군’은 올바른 리더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정재에게 이런 부분은 영화 속에서만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 현재 이정재는 배우 정우성과 함께 소속사를 경영하고 있는데, 만들어진 지 1년도 안 돼 수많은 배우들과 함께 하게 됐다. 거대한 매니지먼트로 우뚝 선 회사를 일궈낸 그가 생각하는 리더로서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어떤 조직이든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 우리 회사는 직원도 배우도 매니저도 모두 수평적 공존 관계다. 소속 배우들이 회사에 자주 온다. 시나리오도 보고, 상의도 한다. 회식은 너무 잦아서 힘들다.(웃음) 회사를 알리려고 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락이 오면서 늘었다. 한 번 놀러온다고 하면 그 다음엔 못 나가는 거다.(웃음) 고민을 하기도 했다. 돈 버는 목적은 아니다. 이 회사를 왜 만들었느냐 생각해 보면 서로 정보와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가장 현명한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적자로 갈 확률은 없겠다 싶었다. 제작 같은 것은 논의 중이지만 결정은 못했다. 지금도 일이 너무 많다. 배우들 시나리오 읽어주는 일을 가장 많이 한다.”
또 ‘대립군’은 개개인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는 영화다. 개인이 자신의 이름을 온전히 찾을 때 사회 역시 완성된다고 영화 ‘대립군’은 말한다. 회사에서는 대표로, 작품 안에서는 주인공으로, 그가 맡아야 할 임무가 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이정재 역시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다.
“우리들 모두 사회생활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냐도 중요하다. 내 가족이나 주변사람들도 나로 인해 관심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오히려 개개인의 이름은 없어지고 ‘김과장’ ‘이대리’가 되지 않나.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나의 이름도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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