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노조도 변해야 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회사(동양시멘트)가 사정이 어려우니 한달 밥값 6만원을 깎는다기에 고통분담 차원에서 수긍했는데, 같은 광구에서 일하는 정규직은 체력 단련비로 연간 72만원이 신설된 임금협약을 체결한 걸 알게 됐습니다. 아랫돌(비정규직 몫) 빼서 윗돌(정규직 몫) 괴는 식으로 임금협상을 하니 현장에서도 정규직과 감정의 골이 생길 수 밖에 없죠.”

2014년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었다가 2015년 해고된 안영철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말이다. 이 사례는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오히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 등 각종 처우 격차가 큰 우리나라의 왜곡된 노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1일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2013년 발간한 ‘노동조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를 줄이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학력이나 능력 등 인적자본축적량을 제외한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적 임금격차는 유노조 사업장(42.07%)이 무노조 사업장(37.94%)보다 4.13%포인트 더 높았다. 전체 임금격차를 100으로 봤을 때,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단순히 신분(정규직과 비정규직)차이로 발생하는 임금격차가 42.07로 무노조 사업장(37.94)보다 더 크다는 뜻이다. 이 보고서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대량 정리해고를 겪은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고용유지에 관심이 높은데, 비정규직의 낮은 근로조건을 묵인하는 대신 정규직 조합원의 고용보장이나 임금 상승을 약속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노조의 교섭력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 격차를 완화하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나라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교섭체계가 근로자간 격차를 확대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물론 비정규직 문제를 위해 함께 싸우는 정규직 노조도 있다. 세종호텔 노조는 1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동료들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단협을 사측이 지키지 않자, 정규직들이 반발했다. 광화문 고공농성에 참여한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은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방패막이 아니며 비정규직이 확대되면 정규직들도 고용 불안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조의 도덕성만 강조하기엔 한계가 있는 만큼, 기업별 노조가 아닌 산별 노조의 교섭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경제적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조직인데,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를 지적하는 것은 도덕적 책무 질책에 불과하다”며 “노동계가 초기업단위(산별) 중심의 교섭구조를 만들어 가고, 비정규직 노조 조직을 동시에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우 한국노동연구원 사업체 패널팀장도 “기업별 노조에서 벗어나 산별 단체협약 확대로 중소ㆍ영세ㆍ비정규 노동자간 격차를 완화하는 게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이 사업체패널조사를 분석한 결과, 30인 이상 사업체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2005년 34.3%에서 2013년 27.0%로 크게 줄어왔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규직은 노조의 과보호 상태에서 생산성 보다 높은 임금을 받았고 비정규직은 시장 상황에 준하는 임금을 받은 것”이라며 “현재 비정규직의 차별적 대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노조가 이기주의를 내려놓고 과보호된 부분을 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은 “양대노총 내 중요한 단위 노조들이 노사 담합으로 오히려 비정규직을 배제해온 부분도 있다”며 “산별 노조가 바람직하지만 실제로 쉽지 않은 만큼, 노동계 안에서 협의를 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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