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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인사이드] KCC, 본업보다 백기사 투자에 더 집중…형제 간 계열분리 가능성 높아

입력
2017.06.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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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진 KCC 회장. 한국일보 자료 사진
정몽진 KCC 회장. 한국일보 자료 사진

“건축자재 회사야? 투자 회사야?”

지난 2015년 6월 국내 건축자재ㆍ도료 1위 기업인 KCC가 삼성물산의 자사주 전량(899만 577주)을 매입하자 증권가에서 나온 말이다.

KCC는 2000년대 초반부터 현대중공업, 한라, 제일모직 등 본업과 관련이 없는 회사 주식을 대거 매입해 왔다. 특히 KCC는 외국계 투자회사와 국내 기업이 지분 확보 경쟁을 벌일 때 국내 기업 편을 들며 해당 회사 주식을 대거 매입하는 ‘백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실제 KCC는 2008년 네덜란드계 투자회사 선세이지에 맞선 한라그룹의 우군으로 만도 주식을 사들이는 데 돈을 투자했다. 또 2015년에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지분 확보 경쟁을 벌였던 삼성물산의 백기사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투자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우선 만도 지분 투자로 KCC는 3년 만에 약 5,145억원의 매각 차익을 얻었다. 2011년 사들인 제일모직 주식(42만5,000주)도 삼성에버랜드와의 합병이슈로 3년 만에 47%나 올랐다. KCC는 제일모직 주식 일부를 2014년 시장에 내다 팔아 약 1,240억원을 남겼다. 남아 있는 제일모직 주식도 삼성물산과의 합병 이슈로 가격이 취득원가의 5배까지 오르면서 당시 1조원 이상 평가 차익을 얻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 외에도 현재 KCC가 보유한 현대중공업, 한라, 현대산업개발 등 상장 주식도 대부분 가격이 크게 오른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KCC가 보유한 14개 상장사 주식의 장부가 금액은 3조881억원으로 취득원가(1조5,963억원)의 2배에 육박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수익을 고려하지 않는 백기사 투자로 이 정도 수익을 올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KCC가 본업을 버리고 투자 회사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건자재ㆍ도료 부동의 1위

KCC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 동생인 정상영(81) 명예회장이 1958년 서울 영등포에 세운 금강스레트공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1974년 고려화학을 설립하고 2000년 두 회사를 합병해 지금의 KCC그룹을 일궜다.

KCC가 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것은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에 접어든 1970년대부터다. KCC는 건설경기 붐을 등에 업고 다양한 건축자재와 도료 등을 생산하며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현재 KCC가 생산하고 있는 제품군은 도료, 유리, 바닥재, 창호, 실리콘 등 10여종에 달한다. 제품수로는 2만여 개가 넘는다. 집을 지을 때 내ㆍ외부에 들어가는 주요 건축자재를 모두 생산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KCC의 장점은 거의 모든 건자재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내수 시장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는 점”이라며 “KCC가 건설경기 변동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을 이어가는 이유”라고 말했다.

KCC 성장세는 실적 지표에서 드러난다. KCC 연결기준 매출은 2013년 2조8,627억원에서 지난해 3조5,123억원으로 3년만에 22.6% 늘어났다.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770억원에서 2,757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다만 신사업인 실리콘과 유기소재, 홈인테리어 사업 등 기타 사업분야에서는 3년째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어 비 건자재 사업 분야의 수익성 개선이 남은 과제다.

황금비율로 주식 나눠가진 3형제

슬하에 세 아들을 둔 정 명예회장은 KCC의 후계구도를 비교적 일찌감치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명예회장은 2000년 장남 정몽진(57) KCC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상태다. 정몽진 회장은 KCC지분 18.08%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장남으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다.

대신 차남과 3남은 KCC의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차남 정몽익(55) KCC 사장은 KCC 계열사인 코리아오토글라스 지분 20%를 확보한 최대주주다. 3남 정몽열(53) KCC건설 사장은 KCC건설 지분 29.99%를 갖고 있다. KCC가 이 회사 지분 36.03%를 확보한 1대주주인 만큼 개인으로는 정몽열 사장이 KCC건설의 최대주주인 셈이다.

재계에선 3형제가 주요 계열사 지분을 골고루 나눠 보유한 것을 근거로 향후 KCC가 형제 간 계열분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룹 모태이자 주력기업인 KCC는 장남이 경영하지만, 자동차 안전유리 등을 생산하는 코리아오토글라스는 차남, 건설업체인 KCC건설은 3남 몫이라는 것이다. 코리아오토글라스와 KCC건설은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각각 4,402억원, 1조1,20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재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이 3형제에게 주요 계열사 지분을 골고루 배분해 경영권 분쟁의 불씨를 미리 없앤 셈”이라며 “다만 차남과 3남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바탕으로 계열 분리를 시도하고 독자노선을 걷게 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미 본 백기사 투자가 최대 리스크로

KCC가 ‘백기사 투자’로 짭짤한 재미를 본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이 투자가 KCC의 최대 리스크라는 분석도 나왔다. KCC가 상장회사에 투자한 금액이 3조881억원(장부가액)인데, 회사 전체 자산(9조1,623억원)의 3분의 1 이상을 넘어설 정도로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투자 규모가 과도하게 커지다 보니 KCC의 주가도 실적 지표 보다는 투자한 회사의 주가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장부가액만 2조1,346억원에 달하는 삼성물산 주가는 KCC 실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KCC는 2015년 제일모직과 합병하기 전 삼성물산 주식을 주당 7만 5,000원에 매입했는데, 이는 합병 법인 삼성물산 주가로 환산하면 약 21만 4,000원에 해당한다. 즉 현재 삼성물산 주가가 21만 4,000원 미만이면 KCC는 투자 손실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양사 합병 직후 20만원에 육박하던 삼성물산 주가가 최순실 사태와 관련한 특검의 삼성그룹 수사가 본격화 된 후 지속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달 들어 삼성물산 주식은 14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삼성물산의 주가 하락은 KCC 실적 지표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실제 KCC는 지난해 영업 호조로 전년동기 대비 5.6% 증가한 3,26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당기 순이익은 오히려 17.5% 줄어든 1,529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당기 순익에는 영업외 투자 손실이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향후 삼성물산 주가가 더 떨어지면 KCC 당기 순익도 함께 감소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KCC측도 공시를 통해 “지난해 당기 손익 감소는 투자주식 손실 발생이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KCC가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비대해진 외부법인 투자 규모를 줄여 나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KCC 관계자는 “투자는 정몽진 회장 등 최고 경영진이 판단해 결정하고 있다”며 “투자 규모를 늘리거나 줄이는 것과 관련해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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