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카오 첫날 1교시에 인문학적 질문
940만명 응시… 전국이 몸살
과외 심각해도 문제는 창의적
(1)개인의 의식은 그 개인이 속한 사회를 반영하는가? (2)사람은 3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글자가 있는 책, 글자가 없는 책, 마음의 책이 그것이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대학에 진학하려는 프랑스 고교생이 보는 바칼로레아 논술시험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올바른 답을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을 보는 진짜 시험으로 여겨지면서 우리 대학입시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제시되기도 한다. (1)번 예시문은 2015년 바칼로레아 철학시험 문제 중 하나다.
우리의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가오카오(高考)로 매년 여름이면 몸살을 앓는 중국은 어떨까. 지난 6~9일 치러진 가오카오 응시생만 940여만명이다. 우리의 수시전형에 해당하는 방식의 입학정원이 많지 않은 중국에선 가오카오 성적에 대한 압박과 무게감이 우리보다 훨씬 더하다. 최근 몇 년 사이 한화 수백만~수천만원의 단기 고액과외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한 건 ‘가오카오 망국론’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 가오카오에는 나름의 돌파구가 있어 보인다. 첫날 1교시 어문시험의 한 부분인 작문시험 때문이다. (2)번 예시문은 올해 치러진 저장(折江)성의 작문 문제다. 철저하게 자신의 지적 능력, 인문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고에 기반해서 써야 한다. 광범위한 독서량은 필수다. 충칭(重慶)ㆍ랴오닝(遼寧) 등지에선 두보의 시와 루쉰의 소설 등 6개 문학작품 가운데 3개를 골라 독창적으로 해석한 뒤 새로운 글을 쓰는 문제가 나왔다. 이전에는 ‘에디슨은 휴대폰을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딱딱함과 부드러움을 어떻게 다뤄야 조화로운 자아를 만들 수 있나’ 등이 작문 주제였다.
작문시험은 가오카오 총점 750점 중 50~60점이다. 보기에 따라선 큰 비중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작문시험에 대한 중국 교육당국의 주목도는 훨씬 높은 듯하다. 작문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경우 다른 과목 성적과 무관하게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다. 이는 사회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창의적인 사고를 다른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작문시험은 채점 과정도 엄격하다. 1차와 2차 채점 결과 오차가 15%를 넘으면 3명이 3차 채점을 진행한다. 이때도 오차가 15%를 넘으면 평가원장이 직접 나서 종합점수를 매긴다. 한 성(省)에서 만점자가 나오면 비공식적으로 다른 지역으로부터 평가를 받고 이를 통해 만점자가 줄어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근래 들어 작문시험의 주제가 정치색을 띠고 있다는 논란도 일부 있다. 2015년엔 운전 중 휴대폰 통화를 한 아버지를 딸이 경찰에 신고한 데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이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법치주의 강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비판받았다. 올해에도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100주년을 묘사하라거나 중국에 온 유학생에게 2,3개의 키워드로 중국을 소개하라는 등의 문제가 제시돼 애국심 고취 논란에 휩싸였다.
가오카오가 사실상 인생이 걸린 시험이라 여러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중국이 고전과 현대 철학을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기를 요구하는 교육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에는 매년 전국 초중고 학생의 25% 가량이 참여하는 ‘초나라 재인들의 작문 경선대회’를 비롯해 수많은 작문 경시대회가 개최된다. 인터넷 사용인구 중 42%가 주로 사용하는 앱 중 하나로 전자책 관련 앱을 꼽았다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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