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정 LG전자 연구위원
입사 후 20여년 AI 한우물
“자율주행차 시대 핵심 기술 영상인식 능력 향상에 주력”
“지금까지 가전은 쓰면 쓸수록 상태가 안 좋아졌지만 이제 그 반대가 될 겁니다.”
전혜정 LG전자 연구위원은 11일 인공지능(AI)과 만난 가전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래 쓰면 고장이 잦아지고 바보가 되는 게 가전의 숙명이었지만, 앞으로는 이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똑똑해지고 주인이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찰떡같이 알아서 그에 맞추게 될 것이란 얘기다. 그는 “세탁할 때 헹굼을 한 번 더 추가하는 습관이 있다면, 헹굼 단추를 누르지 않아도 세탁기가 자동으로 ‘헹굼 두 번’을 설정하는 시대가 곧 온다”고 그 예를 들었다.
전 위원은 1994년 LG전자 입사 이후 드물게 음성인식, 영상인식 같은 AI의 기반이 되는 기술만 연구해왔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임원급 대우를 받으며 연구에만 집중하는 ‘연구위원’으로 2015년 발탁됐다. 개념조차 생소했을 20여년 전부터 ‘AI 외길’을 걸었다는 게 의아했지만, 그는 “사람과 같은 뇌를 가진 대상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인공지능 연구는 50년도 넘은 분야”라며 “최근 사람들의 기대 수준이 높아져 과거에 나온 서비스는 AI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피처폰 시절 “우리집”이라고 말하면 집에 전화를 걸어주던 기능이 초보적 단계의 AI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 위원은 “한동안 관심이 시들했지만 알파고 등장 이후 인재들이 다시 모이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 LG전자는 영상인식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시리, 빅스비 등 AI 비서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음성인식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반면 영상인식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 때문에 발전 속도가 더뎠기 때문이다. 전 위원은 “영상인식은 단기적으로는 로봇청소기에 적용해 사람 발이 길을 가로막을 경우 이를 인식하고 ‘발 좀 치워주세요’라며 소통할 수 있다”며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차가 고속도로 안내판을 읽고 스스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알파고가 인간 최고수를 잇달아 꺾은 이후 AI 발전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우려도 커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전 위원은 공상과학(SF) 영화에서처럼 기계가 인간을 위협할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본다. 전 위원은 “사람의 뇌는 생전 처음 부딪혀 보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직관적 판단이 가능한 ‘범용지능’인 반면 AI는 아직 일정 분야만 잘하도록 특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사람을 이기는 게 아니라 사람이 원하는 것을 적시 적소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LG전자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LG전자는 1일자로 기존 ‘인텔리전스연구소’를 AI를 전담하는 ‘인공지능연구소’와 로봇을 전담하는 ‘로봇 선행연구소’로 확대 개편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전 위원 같은 전문가의 연구위원 발탁을 늘리고 외부 인재 영입에도 적극 나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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