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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2017의 내가 1987의 나에게

입력
2017.06.1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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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이다, 머리가 왜 이렇게 하얘?’, ‘지나가다 만나면 못 알아보겠다.’ 10여 년 만에 만난 선배도 있었고, 대학 졸업 후 처음이지 싶은 친구도 있었다. 낯은 익은데 누구인지 금방 생각나지 않는 얼굴도 여럿 보였다. 모인 사람들은 맨바닥에 주저 앉아 무대를 바라 보았다. 무대 가운데 설치된 화면에는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한 남학생이 부축하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30년 전의 시위 장면과, 열사의 장례식 모습,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의 얼굴도 화면에 흘렀다. 지난 6월 9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문화제에서였다.

문화제 제목은 ‘2017이 1987에게’였다. 제목에 걸맞게 사회는 1987년을 대표하는 이한열의 친구와 2017년을 대표하는 현재의 대학생이 맡았다. 1987년 즈음 왕성했던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2017년의 활동이 기대되는 신인 가수 안예은이 한 무대에 올랐다. 이한열 세대인 중년들의 인터뷰와 2017년 젊은 대학생들의 인터뷰가 같은 화면에서 교차되었다. 대학 동문들과 한 마당에 앉아 노래와 인터뷰에 귀기울이니 내 마음 또한 30년 전 스무 살과 지금을 오고 갔다. 시위와 최루탄 연기가 미세먼지주의보보다 흔했던 과거와, 주말마다 촛불을 들던 현재가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가고 없는 이한열이, 그 목숨 받아 살아 있는 우리와 함께 숨쉬는 것 같았다. 2017의 내가 1987의 내 어깨를 도닥이며, 현재는 여전히 힘들지만 과거는 헛되지 않았고 미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2004년 아디다스의 광고가 생각났다. 절묘한 컴퓨터 합성으로 전성기 때 무하마드 알리와 그의 딸 라일라 알리가 링 위에서 권투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광고이다. 과거의 아버지와 현재의 딸, 두 명의 권투선수는 나비처럼 링 위를 날아 다닌다. 그러다가 딸이 아버지에게 벌처럼 날카로운 펀치를 한 방 쏜다. 맞은 아버지는 딸의 주먹이 대견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합성이 워낙 자연스러워서 진짜 경기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광고 카피는 화면의 감동을 두 배로 더해준다.

세계적 복서 무하마드 알리(오른쪽)와 그의 딸이자 복서인 라일라 알리가 권투 시합을 하는 장면을 컴퓨터 합성 기법을 통해 제작한 2004년 아디다스 광고. 유튜브 캡처
세계적 복서 무하마드 알리(오른쪽)와 그의 딸이자 복서인 라일라 알리가 권투 시합을 하는 장면을 컴퓨터 합성 기법을 통해 제작한 2004년 아디다스 광고. 유튜브 캡처

NA) 불가능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했다.

여자는 권투를 할 수 없다고.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해냈다.

나는 링에 섰다.

내 아버지 알리의 외침이 들려온다.

싸워라 내 딸아! 넌 할 수 있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막) IMPOSSIBLE IS NOTHING

(아디다스_TVCM_2004_알리부녀편_카피)

인종차별에 맞서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렸던 아버지 알리와 여자는 권투선수를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과 싸워 챔피언이 되었던 딸 알리. 그들은 불가능이 아무 것도 아님을,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동시대의 시간과 공간을 살아온 동년배들, 미래의 주인공이 될 후배들과 함께 광장에 앉아 있으니 지난 30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우리 함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일들을 해냈다는 벅찬 마음도 들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데 무대 뒤편 빌딩 전광판에 흘러가는 영상 광고의 자막이 눈길을 끌었다. ‘이제[촛불]이 대통령이다 / 이제[헌법]이 대통령이다 / 이제[광화문]이 대통령이다 / 이제[국민]이 대통령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에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궁금해 찾아보니 국민들의 정책 제안을 받는 새정부 사이트의 홍보영상이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나는 잘 모른다. 더 멋지고 듣기 좋은 광고로 약속하고 지키지 않은 대통령도 여럿 알고 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모든 것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경험으로 이미 안다. 하지만 지나갔어도 아직 끝나지 않은 그 시절을 소환하는 시청 광장에서, 나는 생각한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아디다스_TVCM_2004_알리편_유튜브 링크)

(광화문1번가_홍보영상_2017_유튜브 링크)

정이숙 카피라이터ㆍ(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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