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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엔 왜 신호등이 없을까?

입력
2017.06.10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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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엔 신호등이 없다. 수도 팀푸에선 경찰이 수신호로 신호등을 대신하고 있다. 사진 부탄관광청 제공
부탄엔 신호등이 없다. 수도 팀푸에선 경찰이 수신호로 신호등을 대신하고 있다. 사진 부탄관광청 제공

히말라야 산맥 동쪽, 인도와 중국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작은 고원의 나라 부탄을 수식하는 말은 많다. 국민 대다수가 행복을 느끼는 ‘행복지수 1위’의 나라, 하루에 200~250달러씩 체류비를 내야 관광할 수 있는 나라,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제공하는 나라, 도축과 낚시가 금지된 나라, 무엇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호등과 고속도로가 없는 나라다.

부탄은 인구가 약 77만 명(2016년 12월 기준)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지만, 대중교통이 열악해 국민 대부분이 이동수단으로 승용차를 이용한다. 그래서 승용차 보급량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2014년 6만9,602대에서 2015년엔 7만5,190대로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엔 8만 대를 넘겼다. 하지만 교통사고는 줄고 있다. 부탄 교통안전 당국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023건, 2014년 791건, 2015년엔 715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자동차는 늘고 신호등도 없는데 교통사고는 줄고 있는 현상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이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제32회 한국국제관광전(KOTFA 2017)이 열렸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부탄인들에게서 부탄의 독특하고 흥미로운 자동차 문화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부탄 도시 도로의 풍경. 마치 시골처럼 신호등 하나 없이 단조롭다
부탄 도시 도로의 풍경. 마치 시골처럼 신호등 하나 없이 단조롭다

“네, 맞습니다. 부탄엔 신호등이 없어요. 고유의 문화죠. 부탄 자동차의 반이 몰려 있는 수도 팀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신 팀푸엔 교통경찰이 수신호로 통제합니다. 아침과 늦은 오후의 출퇴근 시간엔 팀푸의 도로도 꽤 붐빈답니다.”

부탄관광청 직원 라자 구룽의 말이다. 부탄에 신호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설치했다가 인간미가 없고 자연스럽지도 않다는 이유로 철거했다. 부탄 사람들은 신호등이 없는 지금의 단출한 도로 풍경을 더 마음에 들어 한다. 신호등이 없어도 국민 대부분이 안전하게 운전해 불편함이 없고 큰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다.

부탄의 도로 위엔 짐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과 말 등이 다니고 길이 험난해 빨리 달리기 어렵다
부탄의 도로 위엔 짐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과 말 등이 다니고 길이 험난해 빨리 달리기 어렵다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은 과속이 아닌 무면허 운전이다. 부탄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면 평균 6개월 정도가 소요될 정도로 매우 까다롭고 엄격하다. 외국인의 경우 국제운전면허증이 있다 하더라도 부탄에선 한낱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 단, 인도 운전면허증은 유효하다. 부탄과 인도는 문화·외교·국방·산업 등 모든 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인도인들에게 꽤 관대하다. 관광객 대부분도 인도인이다.

사진과 영상으로 본 부탄 도로의 모습은 신호등은 없지만 질서정연했다. 도로를 달리는 차는 웬만해선 50㎞/h를 넘기지 않는다. 험한 오르막길에서 30㎞/h 넘게 달릴 수 있으면 그날은 운이 좋은 거다.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한 부탄은 국토 대부분이 거친 산악지형에다 광업이 발달해 대형 트럭이 많이 다니기 때문이다. 길도 험해 지역을 오가는 버스를 ‘구토유발차’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그래서 승용차로 SUV나 픽업트럭, 도시에선 소형차를 선호하고 모터사이클은 드물다. 대신 산악자전거가 인기다.

신호등은 없지만 도로표지판은 있다
신호등은 없지만 도로표지판은 있다

부탄에 신호등이 없는 이유는 느림을 미학으로 삼는 국민의 생활 습관도 한 몫 거든다. 부탄 전체가 ‘슬로 시티’이다. 부탄 교통에 있어 경찰의 비중은 큰 편인데,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일어나면 경찰이 오기 전까지 사고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 경찰이 와서 현장을 확인한 후에야 사고 차를 옮길 수 있다. 비좁은 1차선이어도 사람들은 경찰이 올 때까지 모두 기다린다.

라자 구룽은 부탄의 택시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탄에선 승객 한 사람이 택시 요금을 부담하려 하지 않습니다. 두세 사람 더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에 사람이 꽉 차면 출발합니다.” 아무도 기다리는 데 있어 불평불만을 표하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는다고 한다.

부탄인들의 언어 유희와 해학이 엿보이는 도로표지판 문구들
부탄인들의 언어 유희와 해학이 엿보이는 도로표지판 문구들

라자 구룽은 부탄인들의 이러한 여유롭고 관대한 사고방식이 국민 스스로 느끼는 행복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부탄은 1인당 국내총생산이 2,668달러(2015년 기준)밖에 되지 않지만, 국민의 97%가 행복을 느낀다. 이는 부탄이 2008년부터 시행한 ‘국민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로 알 수 있는데, 총 33개의 지표를 바탕으로 측정한다. 대다수가 라마교 신자인 부탄인들은 삶의 가치를 물질에 두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환경과 전통문화, 여가, 교육, 지속가능한 사회 등이다. 일은 하루에 7시간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쓴다.

부탄의 이러한 철학은 바쁘게 사는 다른 나라에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 히말라야 여행에서 부탄을 방문한 뒤 본인의 SNS에 ‘정부가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면, 정부의 존재 가치가 없다’라는 부탄 헌법에 나오는 글귀를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에 정부는 부탄을 참고한 ‘한국형 국민행복지수’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부탄을 여행하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부탄을 여행하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부탄엔 일본차와 인도차가 대세였지만 요즘엔 현대자동차가 인기라고 한다. 또한 자연환경 보호와 무거운 세금 때문에 배기량이 낮은 소형차가 60%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 2015년 닛산 리프와 마힌드라 레바 등 전기차도 도입했지만, 충전 인프라와 인지도 부족으로 실제 운행률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부탄 정부는 2020년까지 내연기관 차의 비중을 70%까지 줄이겠다고 밝혔다. 부탄은 산악 지형을 활용한 수력 발전이 발달해 풍부한 전력 자원을 갖고 있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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