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진(목사ㆍ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
30년 전엔 대통령을 국민들 손으로 직접 뽑게 되면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과제가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어떤 정권에서든 권력을 가진 이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잠시만 방심하면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과정을 꾸준히 경험해 왔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는 유신시대로 돌아가려는 시도였고, 권력자들은 언론을 끝없이 장악하려 한다. 가난한 이들의 삶은 30년이 지났어도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국민들에 의해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 권력의 분산을 통해 발전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 대통령과 의회 권력, 사법과 검찰권력의 힘을 견제하고 지방분권을 이뤄야 한다. 부의 재분배도 무엇보다 당면해 있는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6ㆍ10 항쟁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
김정환 (시인ㆍ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장, 민중문화운동연합 의장,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장)
30년 전을 떠올리면 지난해 촛불집회는 심심한 면이 있었다. 심심했다는 건 훨씬 좋아졌다는 거다. 4ㆍ19와 6ㆍ10의 참상과 비교하면 지금은 의사 표현만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시대가 됐으니 이 나라 민주주의가 한 발 성숙했음을 부인할 순 없겠다. 그러나 옛날을 돌아보는 순간 망한다. 촛불에서 탄핵으로 이어진 최근 상황을 두고 누군가는 결말, 누군가는 시작이라고 한다. 나는 또 다른 시작이기를 바란다. 독재 타도라는 옛 구호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의 민주주의를 구상해야 할 때다. 소통과 협치에 있어서 한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낙후 상태다. 저마다 제 목소리를 높이는 게 민주주의가 아닌데 SNS를 보면 더 나은 의견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 없이 자기 의견만 떠든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데 제대로 하지 못했다. 30년 전의 우리는 다 이룬 줄 알았다. 민주화가 완성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끝은 없다. 만드는 데 30년이 걸려도 퇴보하는 데는 1년도 안 걸린다. 30년 전의 기억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박태순 (소설가ㆍ자유실천문인협의회 발기인)
1960년 4ㆍ19, 1970년 전태일 분신, 1980년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30년 전쟁’을 통해 시민사회가 경제근대화의 결실, 사회민주화를 일상생활 속에서 누려볼 자격을 취득했다. 하지만 성숙된 시민사회의 대전환에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6월 항쟁을 성공한 민주화 운동처럼 기념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장 초보적인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10년 뒤인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경제 독점의 시대, 국제 자본 폭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땅의 지도자들은 6월 항쟁을 기념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 여전히 정치 독재, 경제 독점, 문화 독선의 세 가지 독이 한국 역사를 망가뜨리고 있다. 6월 항쟁에 낙관적 의미를 부여할 게 아니라 비관적으로 ‘3포 세대’의 탈출구를 고민해야 한다.
박상훈(정치발전소 학교장)
6월 항쟁의 성과는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종식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 운동의 패턴을 만들어냈다는데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을 때 유럽식 체제혁명이 아니라, 민주적 규범에 기반해 중산층과 민중이 결합해 저항하는 패턴이다. 다만 ‘민주정부’만 생각하다 보니 이 민주정부를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고민이 얕았다. 민주화는 됐다는데 젊은이들은 취업이 어렵고 노인들은 가난하고, 불평등과 이에 따른 모멸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정부라는 공공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잘 활용할 것이냐를 두고 대통령, 정치인, 국민 모두가 심사숙고 할 때다. 그 작업이 성공한다면 6월 항쟁에 이어 문재인 정부는 한국 민주주의의 두 번째 모멘텀으로 기억될 것이다.
법안스님(금선사 주지ㆍ국가인권위원회 위원)
당시 재야 활동을 하는 출가자이자 동국대 불교학과 3학년생이었다. 정의와 진실은 승리한다는 신념을 움켜쥐고 거리로 나갔다. 고통 받는 민중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민중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순수한 수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체포될지 몰라 불안했다. 나를 전담하는 형사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숭고한 정신을 민중과 함께 나눈 것이 자랑스럽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도 선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6월 항쟁은 절반도 성공하지 못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성취하고 사회의 어둠을 조금 밝혔을 뿐 충분히, 힘껏 진보하지 못했다. 인권, 자유, 노동, 남북관계 등에서 진보하는 시늉만 한 정도다. 정치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 언론과 재벌, 관료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도 못지 않다. 이제라도 국민이 보다 단단하게 결속해야 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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