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기원’ 저자
제2회 제주4∙3평화상 수상
“제주 4ㆍ3사건은 미군정의 통제에 따라 자행된 학살로, 미국인으로서 많은 죄책감을 느낀다.”
9일 제2회 제주 4ㆍ3평화상 수상자 자격으로 제주를 방문한 세계적인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74)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제주 4ㆍ3사건에 대해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이날 제주시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에서 열린 4ㆍ3평화상 시상식에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커밍스 교수는 “4ㆍ3사건이 발생할 때는 미군정이 군인과 경찰의 작전통제권을 갖고 한반도 이남을 통제하던 시기”라며 “1948년 4월 3일 이후 제주에서 많은 폭력사태가 발생해 많은 제주도민이 무자비하게 진압을 당했다”고 당시 미국 정부의 책임을 지적했다.
하지만 커밍스 교수는 4ㆍ3 유족들이 요구하고 있는 4ㆍ3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사과와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배ㆍ보상은 현 트럼프 정부에서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는 최악의 대통령으로, 4ㆍ3사건에 대한 사과와 배ㆍ보상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오바마 정부였다면 캠페인 등을 통해 논의가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노근리 사건은 지난 2000년에 뉴욕타임스 1면에 게재될 정도로 미국 사회에서 큰 관심을 가졌다”며 “미국 사회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4ㆍ3사건을 알리기 위해서는 노근리 사례를 참조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커밍스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한국전쟁의 기원’과 ‘한국현대사’ 등을 통해 한국과 제주 4ㆍ3사건을 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그가 저술한 '한국전쟁의 기원'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을 다각적으로 규명했고, 국내외에서 한국전쟁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침서가 됐다.
특히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제주도 인민위원회에 관해 서술하면서 제주 4・3사건의 배경과 원인으로서 지역의 역사 문화적 공동체성을 강조하며 제주 4ㆍ3사건을 부각시켰다. 그의 다른 저서 '한국현대사'에서도 4・3사건의 원인과 전개 과정, 결과를 자세하게 서술해 4ㆍ3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했다. 제주4・3평화상위원회가 커밍스 교수를 제2회 4ㆍ3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또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재인 대통령 당선까지의 과정에 대해 감동을 받았고, 향후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커밍스 교수는 “촛불집회를 통한 탄핵 과정을 통해 한국인들의 성숙한 시민사회 모습을 봤고,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전 세계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례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알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2권짜리 저서인 ‘한국전쟁의 기원’을 한 권으로 줄여 출간을 준비 중이다.
앞서 커밍스 교수는 이날 오전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방문해 제주해군기지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제주해군기지는 미국 유사 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이는 향후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킬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날 현장에서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이 “4ㆍ3사건과 더불어 제주해군기지건설 역시 미국에도 책임이 있는 사안”이라고 의견을 전달하자, 그는 “우선 4ㆍ3사건 당시 미국이 한국에 했던 일에 사과를 드린다. 다만 4·3사건 당시와 현재는 다르며, 최근 새정부도 출범에 따라 민주적으로 현안을 풀어야 한다”고 답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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