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강행군에 꼿꼿한 모습 사라지고
처음으로 환자복 수의 입고 법정에
“고령에 건강 안 좋다” 보석 청구
‘문화ㆍ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4개월째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모습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황병헌) 심리로 9일 열린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재판에서 김 전 실장은 “가끔 흉통이 있는데 어느 순간에 이 놈(심장)이 멎을지 몰라 불안감 속에 있다”며 재판부에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호소했다. 평소 늘 정장 사복을 입고 법정에 섰던 김 전 실장은 이날 처음 사복 차림이 아닌 하늘색 줄무늬 환자복 수의를 입고 재판정에 나섰다.
그는 “늘 사복을 입고 다녔었는데, 들어가고 나갈 때마다 갈아입어야 했다. 바지를 입다가 쓰러지고 정신을 잃거나 기력이 없어서 오늘은 그냥 그대로 나왔다”고 강조했다. ‘치료를 받고 있냐’고 묻는 재판부에 “한 번 밖으로 나가 검사를 했지만 그 뒤에는 (교도소 측에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재판 초기와 비교하면 급격히 기력이 쇠한 김 전 실장의 모습은 겉보기에도 두드러진다. 지난 4월 6일 열린 자신의 첫 재판에서 김 전 실장은 “유진룡 전 장관 증언을 들으면서 현재까지 저와 관련된 점에 대해 사실관계를 말씀 드리고 싶다”며 직접 변론에 나설 정도로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고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의 ‘장(長)’ 표시가 내 발언임을 단정할 수 없다”며 비망록의 증거 능력을 문제 삼기도 했다. 법정 내에서는 꼿꼿한 자세로 변호인들을 진두지휘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주 2,3회씩 진행되는 강행군 재판에 김 전 실장은 점차 쇠약해진 모습을 보였다. 증인 신문이 수시로 밤늦게까지 진행되자 변호인이 재판부에 “고령인 피고인을 배려해 재판을 일찍 끝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잦아졌다. 김 전 실장이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변론하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엉덩이를 앞으로 쭉 빼고 피고인석 등받이에 등을 기대 거의 눕다시피 재판을 받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실제 그는 지난해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출석해 “심장에 스텐트(심혈관 확장 장치)도 7개 박혀 있다”며 “건강이 매우 안 좋은 상태”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은 지난달 26일 재판부에 “고령이고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보석(구속 피고인 석방 제도)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보석을 받아 들일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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