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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리뷰]‘악녀’ 김옥빈의 액션은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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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리뷰]‘악녀’ 김옥빈의 액션은 실화다

입력
2017.06.0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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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가 개봉했다. NEW 제공
'악녀'가 개봉했다. NEW 제공

앞으로 국내외 액션 영화를 언급할 때면 정병길 감독과 권귀덕 무술 감독, 배우 김옥빈의 이름이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액션영화를 여성이 했기 때문은 아니다. 영화 ‘악녀’는 생전 처음 보는 액션들로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전작 ‘나는 살인범이다’, ‘우린 액션배우다’ 등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액션광’인지 보여줬던 정병길 감독이 그동안 꿈꿔왔던 모든 상상과 열정을 담아내 액션의 신기원을 탄생시켰다.

한국영화에서 ‘올드 보이’ 장도리 신과 ‘신세계’ 엘리베이터 신 등은 오랫동안 길이 남을 명품 액션신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악녀’에 나오는 액션신은 모두 킬링 파트다. 액션신이라고 하면 대부분 카체이싱 정도 떠올리겠지만, ‘악녀’에는 그저 그런 액션 신이 나오지 않는다.

먼저 오프닝에서 5분가량 롱테이크로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는 관객들의 정신을 쏙 빼놓으며 앞으로 나올 장면들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든다. 영화 ‘하드코어 헨리’처럼 1인칭 시점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관객들은 주인공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대신 등장한 주인공의 손에 들린 쌍칼과 도끼는 좁은 복도를 배경 삼아 수십 명의 적을 죽인다. 자신이 넘어지든 누가 창문을 깨고 들어오든 거침없이 상대방을 베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이 무자비한 주인공의 얼굴이 나타나길 숨을 죽이며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1인칭으로 이어졌던 구도는 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거울을 이용해 3인칭으로 전환된다. 5분간의 긴 액션신 끝에 드디어 관객들은 김옥빈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끝나나 싶던 액션은 꽹과리 소리에 맞춰 또 한 번 이어지며 황홀하고 경쾌할 지점까지 다다른다. 이렇게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액션신은 스릴감을 넘어 희열감을 안겨준다. (칸영화제 버전은 국내 버전보다 더 길다.) 스턴트맨들이 몇 십 명 떼거지로 나오는 이 신을 위해 충무로의 모든 스턴트맨들을 모두 부른 듯하다. 이외에도 오토바이 4대가 나란히 달리면서 칼싸움을 펼치는 신이나 자동차의 깨진 앞 유리를 통해 보닛에 앉은 후 운전을 하다가 도끼질을 하며 달리는 버스로 뛰어올라가는 신은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다.

과연 액션스쿨 출신의 감독 작품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병길 감독이 5년 전보다 얼마나 발전했는지 또한 확실히 보여 눈길을 끈다. 그의 전작 ‘나의 살인범이다’에서는 어색한 CG가 스릴러 분위기를 해쳤다면, 이번 작품은 대부분 실사로 진행돼 이런 방해 요소를 없앴다. 배우들의 몸에 단 와이어를 CG로 지운 것 외에는 CG를 사용하지 않았고 감독이 일일이 수공업으로 만든 액션신인 것이다.

카메라의 이동과 함께 이어지는 공간 구성 역시 스태프들의 노력이 느껴진다. 새하얀 멸균실에서 화사한 발레연습실, 그리고 엄숙함이 맴도는 연극무대과 분장실로 이어지는 신들을 통해 미술ㆍ촬영 분야 역시 디테일하게 신경 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악녀’는 중간 중간 삽입되는 연극을 통해 비주얼적으로도 기괴함을 추구하며 긴장감을 높인다. 휘파람 소리와 낡고 푸르른 색감은 잔인한 분위기를 살리며, 예상과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등 흐름의 의외성은 극에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흥미롭다.

영화 '악녀'가 화려한 액션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NEW 제공
영화 '악녀'가 화려한 액션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NEW 제공

이런 화려한 액션신과 비주얼에 힘을 불어넣어야 하는 것은 서사다. 의문의 관계성으로 점철된 인물들과 숙희의 인생은 그녀가 ‘악녀’가 돼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해 주면서 극을 극단으로 치닫게 한다. 숙희는 어린 시절부터 킬러로 길러지다가 조직의 버림을 받았고, 그의 능력을 눈여겨 본 국가 비밀조직 팀장(김서형 분)에 의해 스카우트 된다. 이후 그가 사회로 내보내져 새로운 신분으로 평범한 척 살아가고자 할 때 의문의 두 남자가 나타난다. 옆집에 이사 온 남자 현수(성준 분)는 부드러운 미소로 숙희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한 남자는 숙희가 그토록 원했던 중상(신하균 분)이다. 두 사람을 만나면서 숙희는 자신을 둘러싼 비밀과 거짓과 마주하게 된다.

목숨 걸고 행동했던 일이 의미 없는 일이 되었을 때에는 배신감과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숙희에겐 이 슬픈 이야기가 인생 내내 펼쳐진다. 다만 숙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영화에서 그 과정을 제대로 설명해줬다면 숙희가 느낀 고통과 분노에 대해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인물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은 중상이다. 중상은 어린 시절 숙희를 킬러로 길러 냈던 인물로, 영화 속에서 그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따라가기는 어렵다. 또 다른 남자 현수와의 로맨스는 자세하게 설명되는 것에 비해 정작 중요한 신하균과의 과거 이야기는 지나치게 설명되지 않아 의아함을 자아낸다.

현수와의 로맨스는 영화의 중간 부분을 오롯이 끌고 갈 정도로 깊이 있게 다뤄진다. 갑작스러운 장르의 변화라는 점에서 영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영화의 단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심각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자아내는 신으로 숨통을 틔우는데 제 역할을 한다. 게다가 김옥빈과 성준의 케미스트리가 굉장히 좋다. 성준은 앞서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어색한 연기와 달리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문제는 이런 스토리가 신선하지 않다는 점이다. 휘파람 소리가 인상적인 여성 액션 영화 ‘킬빌’ 등이 떠오르지만,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니키타’의 설정과 너무나도 닮았다. 순진하지만 능력 많은 소녀가 특정 집단에서 킬러로 길러지고, 가짜 신분으로 살면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데다가 그를 뒤에 두고 변기에서 총을 꺼내 타깃을 쏘는 장면 등은 ‘니키타’와 동일하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액션신을 펼치는 모습은 여성 액션물에서 빠질 수 없는 판타지인지 ‘7급 공무원’ ‘목숨 건 연애’ 등에 이어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녀’가 대한민국 액션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준 대한민국 최고 액션영화라는 점은 틀림없다. 특히 기획 과정부터 쉽지 않았을 여성 원톱 액션물을 전 세계 내놔도 자부심을 가질 만하게 만들었다. 김옥빈의 액션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으며, 앞서 독특한 역할을 소화했던 ‘박쥐’ ‘고지전’에서 선보였던 것마저 뛰어넘는 대표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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