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빠진 금융당국
은행권 0.22% 최저 수준 불구
내달 LTVㆍDTI 일몰 앞두고
규제 강화 목소리 커져 고민
“가계 빚은 신용대출이 더 문제
젊은층 내집마련 꿈 꺾어” 지적
실수요자ㆍ투기세력 구분 주문도
금융당국이 내달 말 일몰을 앞둔 주택담보인정비율(LTVㆍLoan To Value)과 총부채상환비율(DTIㆍDebt To Income)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 지를 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청와대를 비롯 정부 주요 인사들이 주택 투기를 막기 위해 대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가계부채 연체율은 사상 최저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출을 조여야 할 명분이나 합리적 이유가 전혀 없다.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릴 때 대출액 산정의 기준이 되는 LTV와 DTI의 새 방향은 이달 말 발표된다. 금융감독원은 규제를 강화할 경우 대출자에 미칠 영향 등을 분석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당국은 규제를 이전 수준으로 다시 강화하는 데는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LTVㆍDTI는 금융사들의 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한 지표인데 현 상황은 크게 문제될 게 없는 수준이다. 은행들의 가계부채 연체율은 사실상 역대 최저치다. 4월말 기준 가계부채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은 0.28%로, 기업대출 연체율(0.79%)보다 0.51%포인트나 낮다.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이 보다 더 낮은 0.21%에 불과하다. 은행권만 보면 주택담보대출 부실채권 비율(3개월 이상 연체한 경우)도 3월말 기준 0.22%에 그쳤다. 오히려 대기업 부실채권 비율이 2.93%로 월등히 높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LTV 규제 완화 이후 가계부채가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저금리, 부동산 활성화 대책 등이 모두 맞물린 결과로 봐야 한다”며 “부실 정도로 대출을 조일지 말지 판단한다면 기업대출부터 줄이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특히 LTVㆍDTI를 강화할 경우 현금이 부족한 젊은층은 집을 사기가 더 힘들어지고 자금 여력이 큰 중장년 계층만 부동산을 사게 될 수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LTV를 50%로 낮추면 사회 초년생은 집값의 반을 모아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결국 지금 젊은층에겐 평생 집 살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 된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경우 갚을 능력만 되면 집값의 90%까지 대출을 해준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서라면 대출 규제가 아닌 다른 방식의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가계빚을 줄이려면 오히려 주택담보대출보다 증가율이 높은 기타대출(신용대출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5년 이후 올 3월말까지 주택대출은 19.5%(90조원) 늘었지만 기타대출은 28.4%(81조2,000억원)나 급증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부 특임교수는 “주택담보대출은 전체 가계빚의 40% 정도인데 주택담보대출만 조이면 결국 가계빚도 못잡고 부동산 경기도 망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수요자와 투기 세력을 구분한 부동산 대책을 주문했다. 백웅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대책의 타깃을 투기 세력으로 정해놓고 이들을 잡기 위한 정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무턱대고 주택대출만 조이면 실수요자만 타격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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