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제가 ‘대인배’가 됐다고(웃음).”
잘못한 일엔 주저하지 않고 사과할 줄 알게 됐다. 미움 같은 감정은 품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사람들을 더 살뜰히 챙기게 됐다. 영화 ‘하루’(15일 개봉)에 출연한 이후 배우 변요한(31)에게 일어난 변화들이다.
영화의 메시지에 배우가 먼저 감화됐으니 이젠 관객들이 느낄 차례다. 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변요한은 “캐릭터와 소재보다는 화해와 용서로 귀결되는 이야기의 힘에 끌렸다”고 말했다.
영화는 똑 같은 하루가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 안에 갇힌 두 남자가 각각 딸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그 시간의 비밀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미스터리 스릴러로 풀어낸다. 변요한은 아내를 살리려 분투하는 사설 구급차 운전기사 민철 역을 맡아 선배 김명민과 호흡을 맞춘다. 그는 “만약 내가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민철보다 더 처절하지 않았을까”라며 잠시 상상에 빠졌다. 피폐해진 얼굴과 충혈된 눈동자 안에 피로감과 예민함을 모두 담아낸 변요한의 연기가 아내의 죽음을 막지 못한 민철의 절망감을 체감하게 만든다.
촬영장은 그 자체로 타임루프였다. 영화 내용이 그러하니 견뎌야 했다. 같은 장소에서 상황 설정을 약간씩 달리하며 반복해 촬영했다. 잠에서 깨어나면서 하루가 시작되는데 그 장면만 몰아서 50번 가량 찍었다. 변요한은 “나중엔 어떤 자세로 잠에서 깨야 할지 아이디어가 고갈되더라”며 웃었다. “모든 ‘하루’가 다 힘들었어요. 매 순간 치열해야 했으니까요. 집중도가 아주 높은 현장이었죠. 그래서 촬영 마치고 집에 갈 땐 오히려 힐링 되는 느낌도 받았어요.”
최근 극장가에서 ‘미이라’ ‘원더우먼’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득세하고 있지만 흥행 부담은 없다. “원하는 대로 다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주연 맡은 상업영화는 이제야 두 번째”라며 짐짓 여유도 부려본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제가 연기를 오래 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 한 작품 한 작품 최선을 다해야죠. 그 마음가짐을 잊어버려선 안 돼요.” 변요한은 ‘초심자’다. 연극배우인 친구들의 대본도 같이 보고 오디션 준비도 도우면서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그가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곁에서 쓴소리도 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어렸을 때 본 영화에서 너무 이상하다고 느낀 배우의 연기를, 지금 나이 들어 다시 보면서 ‘아, 이거였구나’ 새삼 감탄하게 될 때가 있어요. 제가 출연했던 독립영화를 다시 보면서 깨닫는 것들도 있고요. 어떤 연기가 잘하는 연기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더 많이 배워야 해요. 단,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채워가려고 합니다.”
요즘 그는 복싱에 푹 빠져 있다. 영화에서보다 많이 민첩해진 모습이다. 다이어트 삼아 시작했는데 체력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또 하나의 취미는 피규어 조립이다. ‘영웅본색’ 저우룬파(주윤발)와 ‘분노의 질주’ 제이슨 스테이덤 등 배우 피규어를 40여개 모았다. 복싱과 피규어 모두 ‘혼자서’ 즐기는 놀이다. “독립영화 찍고 연극 하다가 드라마 ‘미생’(tvN)으로 대중을 만났어요. 불과 3년 전 일이에요. 그때도 치열하게 살았죠. 그러면서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혼자만의 시간과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있어요. 그러면서 제게 없던 감성도 채워지는 듯해요. 당분간 그러려고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