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나는 늘 사회적·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길 갈망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작가는 그 무엇에서도 해방될 수도 놓여질 수도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목이 수인(囚人)입니다.”
소설가 황석영(74)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자전(自傳) ‘수인’(문학동네)을 펴냈다. 원고지 4,000매, 책으로 두 권 분량에 유년 시절부터 베트남전쟁 참전, 광주민중항쟁, 방북과 망명, 옥살이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담았다.
8일 서울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황석영 작가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부터 우리 민초들이 살아온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겪은 일 중 5분의 1쯤 표현했고 나머지 5분의 4는 시간 속에 가라앉아버렸다”고 소개했다. “옆을 보지 않고 한 길로 달려오기만 했죠, 화살처럼. 하루도 편한 적이 없었어요. 제 자신도 상처를 많이 입었지만 주변에도 많은 상처를 남겼을 겁니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얼마나 부족한 친구이자 선배였는지 뒤늦게 성찰했습니다.”
‘수인’은 2004년 한 일간지에 연재한 자전적 소설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를 대폭 개작한 것이다. 당시 연재는 유년시절에서 시작해 작가가 해남으로 내려간 1976년에서 중단됐다. 신간은 이후 광주민중항쟁을 지나 수감생활이 끝나기까지 20여 년의 기록을 더한다. 책은 작가의 삶을 시간 순서로 따라가지 않고 감옥에서 보낸 5년과 바깥에서의 삶을 번갈아 가며 서술한다. 해외를 떠돌다 귀국 직후 체포된 작가가 설렁탕을 앞에 놓고 안기부 수사관들과 기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 시작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출소하던 날로 끝난다. 황 작가는 “감옥을 현재로 놓고 들락날락하면서 시간을 교직했다”며 “이 책을 내면서 비로소 출감한 것 같다는 얘기도 주변에서 하지만 진정 석방됐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엇비슷하게는 작품과 인생을 합치시켜 살려고 노력했다”고 정리했다. “자전에서 이야기가 끝난(출소) 이후 20년,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게 될 10여년의 세월은 내 몫이 아니고 내 이웃이나 후배나 다른 사람의 몫일 겁니다. 누군가 평전으로 나를 기억해주리라 믿습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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