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캔들 일파만파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이 7일(현지시간)과 8일 각각 서면 및 상원 청문회 증언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수차례 ‘대 러시아 유착 의혹’ 수사 중단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과 코미 전 국장 사이에 제기됐던 모든 의혹에 대해 사실이라고 직접 밝힌 것이다. 공개 석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압 행사를 밝힘에 따라 미 정국에는 큰 파문이 일것으로 예상된다.
코미 전 국장은 8일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그냥 보내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며 “나는 그 말을 수사중단 명령으로 받아들였다”고 증언했다.
코미 전 국장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이 나눈 대화를 요약해 제출한 서면증거를 토대로 의원들의 질의에 대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 전 국장을 해임할 때 “FBI 를 효율적으로 이끌 수 없다”고 설명했는데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의심할 여지 없이 거짓말을 퍼뜨리고 나와 FBI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반박했다. 그는 공화당 소속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충성, 플린 수사 중단, 트럼프 자신의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것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바로 그 세 가지를 그가 요구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FBI 국장 자리를 대가로 자신과 거래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도 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전반이 아닌 플린 전 보좌관에 대한 수사에 국한에 중단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내가 나눈 대화가 사법방해 노력에 해당하는지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도 “나는 그것에 매우 충격을 받았으며 우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코미 전 국장은 서면 증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 압박을 상세히 적어 놓은 메모의 존재도 실재한다며 사적 만남, 대화를 상세히 공개했다. 그는 서면 증언에서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1월부터 자신을 해임하기 직전인 4월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세 차례 직접 만났으며, 여섯 차례 사적인 통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코미 전 국장은 트럼프와 참석한 백악관 그린룸 만찬(1월 27일) 때 트럼프 대통령이 충성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충성심이 필요하다. 충성심을 기대한다”라며 충성심(loyalty)이라는 단어를 네 차례나 언급했다고 했다. 이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이뤄진 2월 14일 미팅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함께 자리했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고문 등을 모두 내보낸 후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 수사 중단을 직접 요구했다고 코미 전 국장은 밝혔다. 이 대목은 코미의 증언 중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사실로 드러나면 탄핵 요건에 해당할 수 있는 사법방해로 이어진다. 코미 전 국장은 이 말을 들은 후 잊지 않기 위해 즉시 메모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 전 국장 해임전 통화(3월 30일)에선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러시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길 바란다’는 말을 하며 재차 압박을 가했다고 코미 전 국장은 덧붙였다.
이 같은 코미의 증언을 놓고 민주당 측은 대통령의 사법방해 행위가 드러났다며 공세를 가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측과 공화당에선 오히려 트럼프의 결백이 입증됐다는 입장을 내놨다. 코미 전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은 수사 대상자가 아니다’라는 점을 알려준 사실도 시인했기 때문이다. 코미 전 국장 증언이 이처럼 정파별 아전인수 해석이 가능한 수준에서 이뤄지자 대통령 탄핵 논란보다 소모적인 정쟁으로 치닫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일단 민주당과 주류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행위가 상당 부분 입증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트럼프 대통령이 사적으로 고용한 마크 카소위츠 변호사는 “(증언으로) 대통령은 완전히 무죄가 입증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미 전 국장의 증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행위가 입증됐는지 여부를 놓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전직 법무부 고위 관료인 마이클 젤딘 변호사는 “대통령이 코미 전 국장과의 독대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 법무장관까지 내보낸 것은 부적절한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기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지워싱턴대 조너서 털리 교수는 “코미 전 국장의 서면증언 중 어떤 것도 대통령이 수사를 방해하고 법을 위반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며 “멍청하다고 해서 기소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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