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에 있는 일본 음식점인 ‘돈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나승혁(가명ㆍ왼쪽)씨.
#1 은둔형 외톨이가 마주한 거울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었어요. 니트(NEETㆍ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ㆍ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은둔형 외톨이? 저는 그런 거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게 힘들어요. 학교 가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기간도 꽤 길어요. 그래도 돈 벌려고 아르바이트도 이것저것 해보고, 친구들 만나서 술도 한 잔씩 하는데 제가 은둔형 외톨인가요?”

은둔형 외톨이들의 첫 번째 특성. 은둔형 외톨이는 자신의 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건 인정할지언정 스스로를 은둔형 외톨이라 여기진 않는다. 자기 비하에 사로잡혀 있는 동시에 자기 합리화를 하기 때문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마주한 거울엔 모순된 두 가지 모습이 함께 비친다.

나승혁(29ㆍ가명)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복귀와 자립을 돕는 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 이 곳에 ‘끌려’ 왔을 때만 해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인했었다.

나씨는 요즘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에 있는 ‘돈카페’라는 일본 음식점에서 일한다. 자립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기자가 가게를 찾았을 때, 그는 익숙한 솜씨로 주문을 받고, 요리를 하고, 그릇을 치우고, 계산을 했다. 숫기가 없어 보이긴 했지만 어엿한 직원 한 명의 몫은 해내고 있었다. 동료들은 한국어가 서툰 일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한국 손님들과 소통하는 데는 오히려 그의 존재가 절실했다. 한 마디로 ‘가게에서 꼭 필요한 직원’인 셈이다.

그는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스스로 ‘폐인’이라 부르는 은둔형 외톨이 중 한 명이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쓸모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 낙인 찍었다.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실수를 하고, 불화가 생기고, 잘리는 일이 반복됐다. “나 같은 게 뭘 하겠어?” 나씨의 마음 속에 자기 불신이 싹튼 건 그 때부터였다.

#2 은둔형 외톨이를 만드는 두 가지 요건

바쁜 점심시간이 끝나고 2시가 넘어서야 음식 냄새를 한껏 머금은 나씨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사실 그에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잘린 경험, 다시 말해 ‘세상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그를 움츠러들게 만든 한 가지 요소일 뿐이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등교거부 청소년이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학교에 다녀야 할 이유’, 즉 ‘희망’을 빼앗은 건 지독한 가정불화였다.

“중학교 때 정말 힘들었어요. 미래나 꿈 같은 걸 다 지워버리고 의미 없이 시간을 보냈죠. 아버지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어요. 그리고 밖에 나가 돈 버는 어머니에 대한 의처증도 있어서 두 분이 엄청 싸우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려요. 부모님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혼하셨어요.”

가정불화는 아버지에게 부엌칼을 들 만큼 끔찍했다. 그런 탓에 나씨는 “적어도 지금까진 내 인생에서 연애와 결혼은 없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학교에 가봤자, 공부해봤자 뭐하나’라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집안이 풍비박산인데 죽어라 열심히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나아가 그는 지금까지 해 온 노력마저도 ‘바보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3 때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현재 나씨가 살고 있는 성북구의 K2 쉐어하우스 입구에 있는 게시판에 ‘나쁜 기분 보증합니다’란 문구가 써 있다. 이 곳에서는 기분 나쁜 채로 있어도 괜찮다는 의미다. K2 코리아 제공
#3 혼자선 극복하기 힘든 ‘무기력의 관성’

은둔형 외톨이의 두 번째 특성. 처음엔 ‘그냥 한 번 멈췄다 갈까?’였다. 하지만 한 번 멈춰버린, 삶이란 육중한 바위를 다시 굴리기란 쉽지 않다. 하루, 일주일은 우습게 한 달, 두 달이 된다. 나름대로 심기일전해서 다시 굴려보려 하지만 힘이 부친다. ‘무기력과 나태의 관성’을 스스로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도 어떻게든 가긴 했어요.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는 몰랐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는 꾸준히 한 덕분에 지방대 일어일문학과에 갔어요. 고시원에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어쩌다 하루 늦게 일어나서 그 날 학교를 안 간 거에요.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가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럴 수 있잖아요. 근데 결국 한 학기 내내 학교를 안 가게 됐어요.”

‘하루쯤’이란 생각, 누구나 할 수 있다. 물론 멈췄다 가도 괜찮다. 하지만 의지와 목표가 상실된 상태에서 멈추는 건 얘기가 다르다. 나씨는 다시 출발할 동력이 없었다.

“학교에 안 가고 딱히 뭘 한 게 아녜요. 하루 종일 뭐하냐고요? 15시간 이상 자요. 그냥 죽은 듯이 잠만 자요. 배고프면 일어나서 대강 끼니 때우고, 다시 자요. 가끔 컴퓨터 하는 정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니까.”

나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굴을 파는 습성’이라고 했다. 학교든 아르바이트든 한 번 어긋나면 그 길로 한 없이 자신을 수렁으로 몰아넣는다. 잘못됐다는 건 알지만, ‘고질병’이라 어떻게 고쳐야 할 지 막막했다. 어머니는 돈 버느라 바빠서, 친구들도 각자 자기 삶 사느라 여유가 없어서 이런 나씨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발벗고 나서 도울 처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섣부른 도움은 비수가 됐다. 나씨는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정신병원에 실려갔다.

#4 엄마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은둔형 외톨이는 “나 은둔형 외톨이니까 어서 날 도와줘요”라고 말하기는커녕 “멀쩡하니까 내버려두라”고 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감지되는 시그널은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내버려 두면 십중팔구 헤어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진다.

그래서 중요한 건 부모의 역할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혼자 힘으론 극복하기 힘든 벽을 마주했기 때문에, 그 벽을 회피하려는 이들이다. 하지만 한국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은둔형 외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문제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극복해낼 거라 믿는다. ‘예전엔 이런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녀가 마주한 거대한 벽의 실체가 뭔지도 알기 힘들다. 그래서 내버려둔다. 오히려 주변에 알려질까 쉬쉬한다. 말 그대로 방치다.

나씨의 어머니인 주상희(54)씨는 여행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해외 출장이 잦아 아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늘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할 당시부터, 말로는 사업을 한다지만 실질적으론 무직에 가까운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려야 했다. 나씨에게 어머니는 늘 밖에 나가 돈 버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아프다는 걸 안 게 고3 수능 앞둔 여름쯤이었어요. 저도 이혼하고 싱글맘으로 아이까지 돌보는 게 힘들었죠.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게만 매달릴 수도 없었어요. 처음엔 승혁이가 그냥 우울증이라고 생각했어요. 자해도 했고요. 내가 출장 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을까봐 겁이 났어요. 그래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을 시켰어요. 기본이 한 달이라고 하더군요.”

나씨에게 정신병원에 갇힌 기억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 나씨는 2년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머리는 장발이 됐고, 씻지도 않았다. 나씨는 “병원에 있는 동안 규칙적인 생활이 강제되니까 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건 되더라”면서도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희망과 의욕에 관해선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K2 코리아에서 개최한 부모 상담회를 찾은 이들이 K2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현재는 정기 상담회 대신 상시 상담 신청을 받고 있다. K2 코리아 제공
#5 자각 없이는 자립도 없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이유는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희망’으로 대변되는 자발적 동기부여가 없다는 게 하나, 가족ㆍ친구ㆍ직장에서의 관계가 상처만 남긴다는 게 또 하나의 이유다. 따라서 은둔형 외톨이의 재사회화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스스로 희망을 발견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일본에서 살았던 적도 있고, 일로도 일본에 오가는 일이 많은 주씨는 이미 88년부터 ‘히키코모리’ 현상을 접했다고 했다. 그런 그도 아들이 히키코모리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엔 정말 그냥 우울증인 줄 알았어요. 병원에서도 그냥 우울증이라고만 하니까. 원인도 그냥 막연하게 중학교 때 겪었던 가정불화 때문에 상처를 입은 걸 거라고 생각했죠. 승혁이를 위해서 본격적으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사업들을 찾아본 건 5년 전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때였어요. 주차장에서 일하게 됐는데, 사람들과 말하는 것 자체가 싫다고 야간 근무를 지원했대요. 그냥 우울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신과 통원치료와 함께 수소문 끝에 심리상담도 시작했다. 나씨가 마음을 열지 않아 상담사도 여러 명을 만났다. 스님과 함께하는 한 달짜리 인도 배낭여행 프로그램에도 참여시켰지만, 매번 그 때뿐이었다. 좋아지나 싶으면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난해 초 승혁이에게 “공부든 알바든 뭐든 한 번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등 떠밀려 알바를 시작했는데, 한 달 만에 쫓겨났다. 고3 때 시작된 나씨의 은둔 생활은 그렇게 10년째 계속됐다. 그리고 주씨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이 곳’의 문을 두드렸다.

#6 은둔형 외톨이의 꿈

“제 꿈은 청소년 심리상담사가 되는 거에요. 요즘엔 시간을 쪼개서 방송통신대 청소년 교육과 수업을 듣고 있어요. 저처럼 힘든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거든요. 중학교 때 너무 끔찍했는데, 도움을 받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거든요. 아직도 ‘나 같은 게 뭘 하겠어?’라는 생각이 가끔씩 들긴 해요. 그래도 같이 생활하고 일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도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 친구들 덕분에 후회도 하고 반성도 많이 했어요. 나중에 저 같은 친구들을 만나면 희망을 잃지 말라고 꼭 얘기해주고 싶어요.”

나씨가 일하고 있는 ‘돈카페’는, 니트ㆍ히키코모리의 사회복귀와 자립을 돕는 일본의 사회적 기업인 K2인터내셔널의 한국 지부인 K2인터내셔널 코리아에서 운영하는 ‘직업체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보니 시급이 넉넉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처음엔 어머니 주씨에게 “나를 노예로 팔았다”며 진심으로 씩씩대기도 했단다.

K2의 자립 프로그램은 공동생활을 기본으로 한다. 지금은 나씨 혼자 한국 사람이고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은,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다가 자립을 위해 한국으로 온 일본 청년들이다.

물론 나씨가 처음부터 공동생활에 잘 적응한 건 아니었다. 날마다 어머니에게 전화해 집에 가겠다,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나씨에게 살려달라는 얘기를 들은 친구가 주씨에게 ‘애가 그렇게 힘들다는데, 꼭 보내야겠느냐’고 항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 아프다는 핑계로 ‘돈카페’에 출근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나씨는 재미있게 생활하는 일본 친구들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들은 퇴근 후에 같이 저녁을 먹고, 둘러 앉아 보드게임이나 마피아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못 이긴 듯 이끌려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사생활이나 심각한 얘기는 일체 꺼내지 않는다. 나씨는 ‘다 같이 어울려서 시끌벅적 재미있게 지내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 곳에서 처음 알게 됐다.

나승혁(가명)씨가 생활하고 있는 방. 히키코모리로 지내다 자립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온 두 명의 일본 청년과 한 방에서 지낸다.
#7 일본의 히키코모리,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

한국에 일본의 히키코모리 현상이 소개된 건 2000년대 초반 무렵이다. 2002년 기사에 따르면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연구팀이 2000년~2002년까지 정신과 외래환자 2,4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4명(2.2%)은 활동형 외톨이(기본적인 사회활동은 하지만 친구가 거의 없는 사람), 31명(1.3%)은 은둔형 외톨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팀은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 변화에 따라 점점 늘어날 것”이라며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지금부터 체계적인 연구와 사회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올해 초 언론들은 은둔형 외톨이의 고령화와 이들에 의한 ‘묻지마 범죄’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오패산 총격살인’ 성병대(2016년 10월), ‘트렁크 살인’ 김일곤(2015년 9월) 등 40대 은둔형 외톨이들에 의한 ‘사회 반감형 범죄’가 이어진 게 계기가 됐다. 하지만 국내에는 여전히 은둔형 외톨이와 관련된 공식 통계가 없다. 2005년 10만명이라던 추정치는 2017년에도 10만명이다. 일각에선 최소 30만명, 많게는 일본에 버금가는 50~60만명 수준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다. 학업중단 청소년 연구가 진행됐지만, 여기서도 은둔형 청소년들은 제외됐다.

주씨는 “정신과 진료, 심리 상담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봤지만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기관은 찾을 수 없었다”면서 “오히려 민간에서 운영하던 학업중단 청소년 지원 사업이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문을 닫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선 기간에 각 후보자 캠프에 복지 담당하시는 분들을 수소문해서 연락해봤는데, 은둔형 외톨이와 관련해서는 ‘급한 불이 아니다, 후순위에 들어간다’는 얘기 밖에 들을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일본이 히키코모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이후 민관이 협력해 실태 파악과 자립 지원에 힘을 쏟은 것과는 판이하다.

한편 지난해 9월 일본 내각부 발표에 따르면 일본 전국에 있는 15~39세의 히키코모리는 54만1,000명으로 2010년 발표된 69만6,000명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일본 역시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40대 이상 ‘고령 히키코모리’들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본의 전국 히키코모리 가족연합회는 후생노동성 지원으로 40세 이상 히키코모리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80대 부모의 연금에 의존하는 50대 히키코모리 자녀들을 ‘80ㆍ50’문제라 부르고 있다. 현재 일본에는 67개의 히키코모리 지원센터가 설치돼 있다.

일본에선 히키코모리였던 이들이 한국에 와서 이렇게 바뀌었다. K2 코리아 제공
#8 나도 히키코모리였다

K2 인터내셔널에서 해외부문총괄책임자로 있는 마사토 야마모토씨는 28년 전인 1989년, 등교거부 청소년 연수 프로그램의 연수생 신분으로 처음 K2와 인연을 맺었다. 요트를 타고 뉴질랜드까지 항해하는, K2의 첫 히키코모리 지원 프로그램이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 지사를 두고 있던 K2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건 2012년. 마사토씨는 “당시 우리처럼 등교거부 청소년이나 히키코모리의 사회 복귀를 돕는 단체는 ‘유자살롱’ 밖에 없었다”고 했다. 유자살롱은 음악을 통해 등교거부 청소년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단체였으나 현재는 운영하고 있지 않다.

22년간 해외사업 부문을 맡고 있는 그는 히키코모리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하려면 혼자 틀어박혀 있는 환경을 바꿔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는 원인은 가정마다, 개인마다 다 다릅니다. 하지만 그들을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모두 ‘환경을 바꿔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일단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와 공동생활을 강제하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새로운 환경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80%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씨는 처음엔 공동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입생’들이 들어오고, 자신이 늘 돌봄을 받던 존재에서 벗어나 누군가를 챙겨주는 입장을 경험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가치를 인식하는 ‘진정한 회복’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K2 코리아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립에 성공한 국내 은둔형 외톨이는 거의 없다. 최근 정기 설명회도 개최하고 상시 상담도 진행하고 있지만 위기감을 느껴 상담하러 온 부모들 조차도 ‘가족 중에 은둔형 외톨이가 있다’는 사실은 숨겨야 할 치부이거나 ‘그래도 내 아이는 괜찮아질 거야’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현재 K2 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는 코보리 모토무씨도 히키코모리였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들을 지원하는 사회 단체들이 많이 생겨야 하는 이유로 ‘동기부여’를 꼽았다.

“저도 공동생활과 직업 프로그램들을 통해 사회에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은 생겼어요.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은둔 생활에서 벗어난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런 단체들이 많아질수록 은둔형 외톨이들이 복귀할 수 있는 사회의 영역도 넓어지는 셈인거죠.”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 자립 프로그램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은 경제적 인식이다. 이를테면 “교육에는 돈 쓰는 걸 아끼지 않지만, 복지ㆍ장애ㆍ니트 같은 분야는 돈을 내기보다 공공의 영역에서 봐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것이다.

주상희씨는 “병원비와 상담비 등등 지난 10년간 승혁이를 위해 쓴 돈이 억 단위”라며 “K2 프로그램도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드는데, 물론 작은 돈은 아니지만 자립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싸다고 볼 것만도 아니다”라고 했다.

마사토씨는 “은둔하는 자녀를 집에서 떠나 보내 공동생활을 시키는 건 물론 자녀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사실은 부모의 삶이 회복되는 계기”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화장을 다시 시작하고, 부부관계가 원만해져요. 일도 더 잘 되고요. 아이는 물론 부모의 삶도 긍정적으로 변해요. 집에만 있던 친구들은 아무리 등 떠밀어도 스스로 밖에 나갈 수 없어요. 그래서 부모님의 역할이 중요한 겁니다. 제가 뉴질랜드 요트 항해에 참가한 것도 부모님 덕분이었으니까요.”

글ㆍ사진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