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언 매큐언의 '넛셸'

이언 매큐언은 소설 제목을 ‘햄릿’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 “아아, 나는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한 왕국의 왕으로 여길 수 있네.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 문학동네 제공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ㆍ민승남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264쪽ㆍ1만3,500원

주요섭의 단편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그저 그런 연애 얘기에서 불멸의 고전으로 승격된 데는 옥희의 덕이 크다. 스물네 살 된 과부와 죽은 남편의 어릴 적 친구가 한 집에 머물며 펼치는 이야기는, 과부의 딸 옥희를 화자로 내세워 “성인의 연정을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서정성 짙은 가작”으로 평가되며 “가장 널리 알려진 주요섭의 대표작”(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으로 기록됐다. 중학생 시절 공식처럼 외운 이 사실을 바꿔 말하면 이렇다. ‘예술로서 소설의 성패는, 화자가 보고 듣고 전할 수 있는 말의 범위를 통제하는 데에 달렸다.’ 영화가 카메라 워크를 통해 서사도 이미지도 아닌 장면을 보여주는 예술임을 증명하듯 소설은 화자를 통해 자신이 언어 예술임을 증명한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 트루디에게 두 남자가 있다. 출판사를 운영하며 시를 쓰는 존, 옷과 자동차밖에 모르는 부동산 개발업자 클로드. 두 사람은 형제 사이다. 존의 아이를 임신한 트루디는 그와 별거한 채 클로드와 불륜관계를 맺는다. 연인과 살인을 공모하면서.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름도 없는 트루디의 뱃속 태아다. 제 아비를 죽인 숙부, 숙부와 바람이 난 어미,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 닳고 닳은 불륜 얘기는 어느덧 ‘햄릿의 재해석’이 된다(이름도 비슷하지 않은가!).

이언 매큐언의 신작 ‘넛셸’은 불륜 서스펜스가 주요섭의 옥희 같은 화자를 만나 ‘철학적 희극’(워싱턴 포스트)으로 승격한 소설이다. 다만 매큐언의 옥희는 햄릿처럼 지적이고, 성숙하고, 무엇보다 냉소적이다. 트루디가 틀어놓는 라디오와 팟캐스트 강의, 자기계발 오디오북 덕분에 국제정세와 고전문학에 해박하다. 물론 몸은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트루디의 몸 안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지만 말이다. 옥희는 숙부를 향한 혐오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들의 계획을 꿰뚫고 있다 한들 자궁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발길질 말고는 없으니.

‘반복과 변주’라는 고전 재해석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작가는 패러디한 인물들의 성격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이를테면 아버지 존은 혼자 있기를 원하는 만삭의 아내로 인해 집에서 쫓겨나고, 동생에게 돈을 빌리며 ‘올빼미 시’나 읊조리는 한심한 인사다. ‘옥희’는 자궁 속에서 ‘죽지 말고 살아서 아버지의 아들을 받아달라’라고 절절한 편지를 쓰지만, 아비는 어느 날 어미 앞에 ‘올빼미시’를 쓴 애인을 소개하며 집을 떠나라고 말한다.

어쨌든 어미와 숙부는 살인을 도모하고, ‘햄릿’처럼 살인에 성공하고, 경찰의 수사를 따돌린다. 공항으로 떠나는 차를 타기 직전, ‘뱃속 무덤에 거꾸로 처박힌’ 우리의 옥희가 햄릿처럼 제 존재를 불사르며 외친다. ‘이제 그만. 세상에 합류할 때가 되었다. 종말을 끝낼 때. 시작할 때. (…) 나의 특별한 도구 검지를 사용해 나는 틀에서 어머니를 빼내기로 한다. 예정일을 이 주 앞둔 내 손톱은 무척 길다. 나는 우선 손톱으로 절개를 시도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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