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관내 대학생 모집
2박3일 지내면 18시간 봉사 인정
구경거리 되는 처지 불편한데
거주민 사전 동의 없이 진행
“수박 겉핧기식으로 뭘 알겠냐”
스펙쌓기용 냉소 섞인 지적도
“쪽방촌 체험 온다는데 혹시 아세요?” “처음 들어보는데, 그게 뭔데요?”
5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남대문경찰서 뒤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쪽방촌에서 만난 한 주민이 ‘중구청에서 대학생 쪽방촌 체험을 할 예정’이라는 말에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 “전혀 들어본 적 없는데” “그런 게 있었나”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일부는 “나라(중구청)에서 한다고 하면, ‘하는가 보다’ 하고 따라야지 싫단 말을 할 수 있겠냐”고 냉소했다. 앞서 중구청은 남대문지역상담센터와 함께 대학생 12명을 모집, 다음달 3일부터 2박3일간 이 곳에서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면서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 등에서 마련하고 있는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을 두고 “거주민 배려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작 체험 ‘대상’이 되는 쪽방촌 주민 의견이나 양해는 전혀 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실효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실 쪽방촌 체험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있었다. 보통 10~20일 전체 프로그램 일정 중 2인 1개조로 나눠 2~4일 정도 체험을 하게 되는데, “겨우 2박3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지내고는 (쪽방촌 실상을) 뭘 알겠냐”는 부정적인 반응이 대표적이다. 70대 쪽방촌 거주민 유모씨는 “어차피 (보고서) 대충 만들어서 회사 들어갈 때나 대학 들어갈 때 쓰려는 것 아니냐”며 “우리도 (학생들이) 귀찮아서 그냥 죽는 소리 몇 번 하고 만다”고 했다. 학생들은 2박3일 체험을 마치면 18시간의 봉사활동확인서를 발급받게 되는데, 취업용 이력서를 한 줄 채우려는 방편이라고 꼬집는 이들도 있다.
쪽방촌 주민들은 구경거리가 되는 처지를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쪽방촌에 2년 가량 살고 있다는 70대 김모씨는 “간혹 젊은 사람들이 와서 ‘사는 것 어떠냐’ ‘불편한 것 없느냐’고 물어 답을 하면 종이에 적고는 휙 간다“면서 “몇 곱절은 어린 애들한테 ‘이거 어렵다’ ‘저거 어렵다’고 말하다 보면, 고마운 감정보다 서글픈 생각이 먼저 든다”고 했다. 15개월째 남대문로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60대 박모씨는 “‘도와주겠다’고 하는 거라 싫은 티는 못 내지만 외부인들이 구경하듯 돌아다니는 걸 보면 언짢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가난을 체험한다는 발상 자체를 문제 삼는 이들도 있다. 2년 전 인천 동구청은 쪽방촌 ‘괭이부리마을’ 안에 ‘체험관’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가난을 상품화하려 한다”는 논란에 휩싸이자 사업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직장인 곽모(25)씨는 “가난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주민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고 꼬집었다. 주민들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빼놓을 수 없다. 학생들이 봉사소감이나 체험수기 등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올리면서, 주민들 얼굴이 여과 없이 게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와 지적에 지자체 등이 나름 대책을 내놓고 있긴 하다. 체험 전후로 간담회를 열어 주민들과 참여 학생들의 건의사항 등을 접수, 프로그램에 반영하기도 한다. 중구청 관계자는 “학생들에게도 SNS 사진 게시 등을 삼가라 등의 요청을 따로 하겠다”고 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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