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ㆍ양극화 해소 추경 수긍해도
세금 쓸 얘기만 부각돼 불안 조짐
구체적 성장 비전으로 신뢰 얻어야
문재인 대통령이 첫 국회 시정연설을 예고했다. 최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서 “필요하다면 추경안이 제출된 이후 적절한 시기에 국회에 가서 시정연설 형태로 의원들에게 설명하겠다” 고 했다. 연설이 확정된 건 아니다. 총리 인선 갈등에, 추경안에도 반대인 야권에선 대통령 시정연설이 떨떠름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으로서는 시정연설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 정책 1호로서, 이번 추경의 성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루어진다면, 문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은 실질적 정치행위가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께 일자리 추경이 왜 필요한지, 그 예산으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등을 열심히 설명해야 한다” 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은 국회에 절박성을 호소하고 야당을 설득해 추경안 처리의 교두보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더민주당 국회 의석 수는 재적 299석의 과반에서 한참 모자라는 120석에 불과하다. 정치적 ‘허니문’을 기대한다고 해도, 자유한국당(107석) 국민의당(40석) 바른정당(20석) 등 야 3당의 부분적 협조라도 확보하지 못하면 추경안 처리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번 추경안에 대한 야권의 반대 이유는 대략 두 갈래다. 추경안이 법적 편성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데다, 근본적으론 세금으로 공무원 숫자 늘리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재정법 89조는 추경 편성 요건을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ㆍ대량실업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최근 경기 회복세로 경기침체 요건엔 해당이 없고, 청년실업 문제도 추경 같은 응급조치로 풀 상황은 아니라는 게 야권의 인식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우선 야권의 반대를 누그러뜨릴 논리적 설득에 초점을 둘 것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주장대로 실업과 양극화 상황이 재난적 수준이라는 점, 추경 대부분이 사실상 소득 하위계층의 소득 보전에 쓰인다는 점 등을 강조할 것이다. 추경 예산을 세수 초과분 등으로 충당해 재정을 악화시키지는 않는다는 점, 이번 추경은 장기 경제정책 추진에 앞선 일종의 ‘마중물’ 성격의 시도라는 점도 설명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기왕 시정연설에 나설 거면 추경안 설명에 더해 메시지 하나를 꼭 추가했으면 한다.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과 산업 발전에 대한 구체적 정책 청사진을 제시하면 좋겠다는 얘기다.
사실 지난 한 달간 국민은 숨가쁠 정도로 빠른 정책 변화를 경험했다. 문 대통령은 ‘잘 준비된 대통령’ 이었고, 집권 하자마자 인사부터 경제ㆍ사회 정책에 이르기까지 물 흐르듯 개혁적 포석을 진행했다. 경제 부문만 해도 재벌개혁은 물론이요, 양극화 해소를 위한 ‘부자 증세’ 를 세제개편의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출범 역시 공정경제 실현의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본다.
문제는 개혁 격랑 속에서 국민의 의구심도 그만큼 빨리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상쾌하긴 한데, 개혁정책이란 게 온통 세금으로 모은 나랏돈 쓰는 일이거나, 대기업 몰아세우는 일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을 갖추라”고 했는데, 혹시 서생적 의식에 함몰된 건 아닌가, 돈은 어떻게 벌 건가, 하는 걱정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문 대통령은 차제에 고개를 드는 의구심을 해소하고 생산적 경제에 희망을 주는 비전을 내놔야 한다.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 고도화의 청사진이든,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 육성계획이든, 대대적 규제완화 계획이든 ‘돈 버는 경제’를 돌릴 청사진 말이다.
대통령이 훤칠하고 잘생긴 신임 참모들과 함께 커피잔을 들고 여유롭게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한 장의 사진에 국민은 유쾌했다. 단호하고 참신한 몇몇 인사에 환호했다. 하지만 상인적 감각으로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에 대한 비전을 조속히 내놓지 못하면 열광이 냉소로 전락하는 건 순식간이다. 경제에 희망을 줄 문 대통령의 상인적 메시지를 기대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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