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아무런 결론 없는 소설일 것입니다. 인간의 방황과 고뇌, 그런 것들만 그려져 있는 것이죠.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조건들, 인간의 야만성, 인간의 삶이 빚어낸 풍경, 그런 것들을 묘사하려고 했던 것이 목표입니다.”
김훈 작가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이 100쇄를 돌파했다. 2007년 4월 출간 이후 10년여 만이다. 최근 10년간 문학시장이 급격히 줄며 신작 소설의 경우 2,3쇄를 소화하기도 힘든 실정으로 이 기간 100쇄를 넘긴 한국소설은 조정래의 ‘정글만리’(2013),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8) 정도로 손에 꼽힌다. 공지영의 ‘도가니’(2009)가 곧 100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칼의 노래’(2001), ‘현의 노래’(2004)와 함께 김훈 역사소설 3부작으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폭넓게 읽히면서 지금까지 60만부를 찍었다. 출판사 학고재는 한국화가 문봉선의 그림 27점, 김 작가의 후기 ‘못다 한 말’을 수록한 100쇄 특별판을 발간했다. 5,000부 한정으로 출간된 100쇄 특별판은 5일 출간 후 이틀 만에 1,000부 가량 팔렸다. 101쇄부터는 문봉선의 그림이 실린 개정 신판으로 나올 예정이다.
7일 서울 종로구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열린 특별판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 작가는 “이렇게 호화로운 책으로 글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도 “미려하고, 좋은 미술품으로 재탄생해 종이가 글을 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 대군을 피해 인조와 신하들이 남한산성에 머문 47일을 그린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역사담론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며 “소설에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언어와 관념의 문제이고, 이것은 현대까지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에서 청문회하면 장관 후보를 데려다가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 이런 썩어 빠진 질문을 합니다. ‘북한이 국가냐 아니냐’ 같은 질문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북한은 강한 무력을 가진 군사적, 정치적 실체입니다.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병자호란 때 청나라를 대하는 것 같은 몽롱하고 무지한 관념에 빠진 질문입니다. 내가 ‘남한산성’을 쓸 때 고뇌와 지금 현실을 바라보는 고통이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작가는 특별판에 실은 ‘못다 한 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남한산성’에 관해 대화를 나눈 일화를 새로 소개한다. 전남 해남에서 열린 명량대첩 축제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같은 열차에 탄 김 전 대통령이 작가에게 주화파, 척화파를 대표하는 최명길과 김상헌 가운데 어느 편이냐고 물었다. 김 작가가 “작가는 아무 편도 아닙니다”라고 답하자 김 전 대통령은 “나는 최명길을 긍정하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작가는 “불굴의 민주투사 김대중이 주화파 최명길에 대해서 그토록 긍정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며 “인간이 정의의 이념을 간직하더라도 현실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나는 생각했다”고 밝혔다.
2년 전 삽화를 의뢰받은 문봉선 화백은 여러 차례 남한산성을 답사하고 100여장의 스케치 중 27점을 수묵화로 그렸다. 급환으로 입원 중인 문 화백은 메모를 통해 “소설이 펼치는 역사의 무거움을 마음에 새겼다”며 “혹독한 겨울, 가파른 산성의 옥죄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20개 색은 흑백, 건습, 농담으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먹의 깊이, 붓의 생동감을 살리려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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