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당시 통신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분리공시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분리공시제 도입에 LG전자가 찬성 의견을 밝히면서다. 분리공시제란 휴대폰 구매자에게 지급되는 제조사 보조금과 이동통신사 보조금을 따로 공개하는 제도다. 현재는 이 둘을 합쳐 최고 33만원 내에서 이통사가 ‘공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하고 있어, 이통사와 제조사가 얼마씩 부담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리공시제는 3년 전 단통법 시행령에 포함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쳤지만 막판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부결되며 도입이 무산됐다. 그러나 이번엔 대통령이 직접 도입 의사를 밝힌 만큼 상황이 다르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분리공시제 도입과 보조금 상한제 조기 폐지를 포함한 단통법 개정안은 이달 임시국회에서 본격 논의될 예정이다.
“통신비 인하” vs “되레 보조금 축소”
6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달 말 분리공시제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을 방송통신위원회에 전달했다. 현재 정부는 문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제조사, 이통사 등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휴대폰 유통 투명성의 확보를 위해서는 분리공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분리공시제 도입 찬반 의견은 여전히 팽팽히 맞선다. 찬성 측이 주장하는 기대 효과의 핵심은 ‘통신비 인하’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정보통신기술(ICT) 정책국장은 “지금은 낮은 요금제를 쓰는 사람은 보조금을 적게 받는 구조인데, 통신사 보조금과 달리 제조사 보조금은 휴대폰에 지원되는 것이라 요금제에 따라 바뀔 이유가 없다”며 “제조사 보조금이 공개되면 요금제와 상관없이 동일한 휴대폰 구매자는 같은 액수의 보조금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보조금을 주는 대신 휴대폰 출고가를 내리라는 압박이 커질 수 있다.
반면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되레 줄어들 것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마케팅비 내역이 낱낱이 공개되면 업체들이 지출을 꺼리게 될 것”이라며 “보조금이 투명해지는 대신 전체 규모가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분리공시제 반대 측은 제조사가 국내 통신사에 지급하는 보조금 규모가 공개되면 해외 통신사들도 동일한 액수의 보조금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LG전자 관계자는 “국내 통신사와 해외 통신사는 경쟁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마케팅비 노출 위험 감수한 LG전자 속내는
LG전자는 분리공시제 도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제조사와 이통사가 유통망에 지급하는 판매 장려금(리베이트)까지 따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베이트는 휴대폰을 팔고 가입자를 늘려주는 대가로 제조사와 이통사가 유통점에 주는 인센티브인데, 액수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아 불법 보조금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유통점이 자신들의 몫을 불법 보조금으로 돌려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활용해온 것이다. 이 때문에 분리공시제가 시행되면 제조사가 보조금은 줄이고 리베이트를 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따라서 리베이트 액수도 공개해야 ‘풍선 효과’를 막을 수 있다는 게 LG전자의 논리다.
업계에서는 분리공시제 도입 논란에 불을 지핀 LG전자의 의도에 주목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제조사가 보조금과 리베이트 액수를 공개하는 것은 마케팅비용을 밝히는 셈이라 불리하다”며 “그런데도 LG전자가 위험을 감수한 이유는 국내 시장을 장악한 삼성전자와 애플의 ‘운신의 폭’을 좁히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분리공시제 도입에 강력히 반대했던 삼성전자 측은 이 같은 논란에 “따로 전할 입장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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