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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테러범’이 뒤흔든 영국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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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테러범’이 뒤흔든 영국의 내일

입력
2017.06.06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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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수사력으로 못잡는 평범한 지하디스트

8일 총선 판도ㆍ브렉시트 앞날에도 영향

영국 경찰이 5,6일 공개한 런던브리지 테러범 쿠람 버트(왼쪽부터)와 라치드 레두안, 유세프 자그바. EPA 연합뉴스
영국 경찰이 5,6일 공개한 런던브리지 테러범 쿠람 버트(왼쪽부터)와 라치드 레두안, 유세프 자그바. EPA 연합뉴스

영국 사회가 ‘이웃집 테러범’에 떨고 있다. 최소 55명의 사상자를 낸 런던 브리지 테러가 평범한 이웃 남성의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새로운 차원의 무차별 공격에 대비한 대테러 전략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급작스레 불거진 ‘안보 이슈’는 8일(현지시간) 치러지는 영국 하원 총선 판도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앞날에도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영국 런던경찰청은 5일 런던 브리지 테러 사건의 용의자 쿠람 샤자드 버트(27)와 라치드 레두안(30)의 신원을 공개했다. 6일에는 또다른 용의자 유세프 자그바(22)에 관한 정보도 발표해, 이로써 당시 현장에서 숨진 테러범 3명의 정체가 모두 드러났다. 파키스탄 태생의 영국 시민권자인 버트와 모로코ㆍ리비아 이중국적자인 레두안은 런던 동부 바킹 지역에서 거주해 왔으며, 모로코계 이탈리아인인 자그바 역시 인근 지역에 살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버트의 행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는 생후 2주된 갓난아이와 3세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에 불과했다. 이웃인 켄 치그보는 미 뉴욕타임스에 “버트는 일주일 전에도 바비큐 파티에 초대해 함께 어울릴 정도로 돈독한 이웃이었다. 나는 그를 신뢰했다”고 말했다. 2014년 바킹의 한 아파트로 이사 온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명문 축구 구단 아스널의 팬을 자처해 주변의 의심을 사지 않았다. 레두안 역시 18개월 된 아이를 가진 아빠였다.

하지만 이는 테러범의 겉모습이었을 뿐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버트는 지난해 영국 ‘채널4’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이웃집 지하디(The Jihadis Next Door)’에 등장했다. 당시 런던의 한 공원에 모인 무슬림 남성 6명 중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깃발을 펼친 한 남성의 뒤에서 기도하는 그의 모습이 포착된 것. 또 2015년 버트의 극단주의 성향과 관련한 두 건의 신고가 각각 경찰과 대테러 직통전화로 접수돼 MI5(영국 국내정보기관)도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BBC방송은 “버트의 행적은 영국 테러범들이 급진화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며 “극단주의자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원인은 온라인의 선전ㆍ선동이 아닌 오프라인 네트워크”라고 지적했다. 버트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성직자 아흐마드 무사 지브릴의 급진 사상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브릴은 제국주의에 대항해야 하는 이념적 토대만 제공했을 뿐, 성전(聖戰) 참여를 직접적으로 촉구하지는 않았다. 실제 버트는 지난해 영국 정보당국에 체포된 안젬 초우더리의 급진 무슬림 조직 ‘알무하지룬’을 추종했는데, 그는 추종자들을 직접 만나 IS 전사로 변모시키는 통로 역할을 해 왔다고 방송은 전했다.

부실한 테러 용의자 관리 비판에 직면한 영국 사법당국은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크 롤리 런던경찰청 대테러담당 책임자는 “용의자(버트)에 대한 수사는 2년 전 시작됐지만 그가 이번 테러 모의에 연루됐다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며 “우리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테러 위협과 맞닥뜨렸다”고 해명했다. 영국 대테러당국에 따르면 버트처럼 기존 감시체계로 관리할 수 없는 ‘평범한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는 3,000여명에 달하며 연계 세력까지 합할 경우 규모는 전국적으로 2만명이 넘는다.

런던 브리지 테러는 총선을 코앞에 둔 영국 정가도 뒤흔들고 있다. 이달 브렉시트 협상 개시를 앞두고 4월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진 테리사 메이 총리의 계획도 위기를 맞은 형국이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이날 ITV와 인터뷰에서 “메이 총리는 경찰 인력 감축을 주도한 인물”이라며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내무장관 재임(2010~2016년) 시절 경찰력을 2만명이나 줄여 3개월 사이 세 차례의 연쇄 테러를 막지 못한 책임을 메이 총리에게 돌린 것이다. 메이의 보수당이 20%포인트 차로 넉넉히 이길 것으로 예측됐던 총선 구도도 현재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1~12%포인트까지 줄어든 상태다. BBC는 “테러 여파가 표심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면서도 “보수당이 이기더라도 메이 정부의 ‘하드 브렉시트’ 전략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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