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교류보다 남북선언 이행이 우선”
거절 이튿날 노동신문 통해 입장 밝혀
전문가들 “태도 모호한 문재인 정부에
외세ㆍ민족 중 공조 대상 선택하란 뜻
공동행사 평양 개최 고집은 명분 쌓기”
북한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민간 교류를 추진하기 전에 6ㆍ15 남북공동선언부터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남북 교류 재개 의지를 보이며 남측 정부가 승인한 민간 단체의 방북에 정작 북측이 호응하지 않은 배경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유엔 대북 제재 동참과 대북 대화를 병행하려는 새 정부에 북측이 외세와 민족 중 한 쪽을 고르라고 요구하는 모양새다.
남측 단체 교류 요청을 일제히 거부한 이튿날인 6일 북한은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논설을 통해 “보수패당이 단절시켰던 일부 인도적 지원이나 민간 교류를 허용한다고 북남 관계가 개선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북남 관계 파국의 근원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 방도는 6ㆍ15 공동선언과 10ㆍ4 선언의 존중과 이행”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말로만 북남 관계 개선 운운하면서 북남 선언들의 이행을 외면하고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진실로 통일을 바라는 행동이라 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북한은 전날 유엔의 대북 제재와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 등을 이유로 대북 인도 지원 단체와 종교 단체들의 방북을 거부했다. 아울러 6ㆍ15 선언 17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개성에서 열자는 남측 요구도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행사 장소를 평양으로 하자고 역제안했다.
이런 반응은 ‘민족 공조’라는 6ㆍ15, 10ㆍ4 선언 기본정신을 이행하라는 북한의 압박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에 발을 담근 상태에서 민간 교류로 관계 개선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자 북측이 단속에 나섰다는 것이다.
북한이 6ㆍ15 공동행사 개최에 대해서만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자신이 중시하는 6ㆍ15 선언 기념 행사를 거부하지는 않되 민간 차원 행사를 굳이 수용할 필요도 없는 만큼 남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인 평양 개최를 제시해 명분을 쌓겠다는 게 북한의 의도일 공산이 크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내각 인선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시간도 촉박한 데다 일부 방북 인사가 돌출 행동을 하면 보수 측 비판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신중하게 접근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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