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강수량 30㎜… 저수지 바싹 말라
작물 심기 전에 지하수 실어와야
심기 전, 심으며, 심고 나서 살수
“마실 물로 악 써 가며 농사 지어”
고지대 마을은 아예 농작 포기
“이번 주말은 시간 좀 되냐? 안 되면 헐 수 읎구~”
3주째다. 통 먼저 전화하는 일 없던 아버지가 매주 수요일만 지나면 아들의 주말 일정을 묻는다. ‘안 되면 안 되는데’로 들리는 충청도말 “안 되면 헐 수 읎구”에는 충청 일대를 중심으로 전국이 말라가는 가뭄에 시커멓게 타버린 농심(農心)이 스며있다. “주말에 갈 게유” 아들의 대답에 아버지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다. “그려, 밭에 물 좀 대자. 가뭄 때문에 승질(성질)나서 못 살겄다.”
주말을 앞둔 2일 밤 확인한 날씨예보는 ‘전국 쾌청, 나들이 좋아요.’ 농민들에겐 ‘이번 주말도 쉬긴 글렀어요’라 받아들여진다. 3, 4일 이틀간 묵은 충남 서산시 운산면 곳곳에선 가뭄과의 사투가 벌어졌다. 최근 두 달 사이 동네에 내린 비는 모두 합쳐야 30㎜안팎이라는 게 주민들 얘기. 같은 기간 충남 전체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 남짓(55.2%)인 90.5㎜인 걸 감안하면, 현지의 절박한 사정을 짐작할 수 있겠다. 작물 심고 잡초 매기도 모자란 시간에 물까지 대야 하는데, 먹을 물마저 말라가니 온 동네가 난리다.
1,600여㎡(약 500평) 규모 밭에 특용작물 지황을 심기로 한 4일, 작업을 위해 새벽 6시부터 찾아간 곳은 밭이 아닌 동네 지하수 펌프시설이다. 트럭에 실린 2톤 규모의 물통에 물을 채운 뒤, 갈아놓은 밭으로 가져가 뿌려야만 작물을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농업용 분무기로 밭 위에 물을 뿌리면, 아버지와 일손을 돕는 동네 아주머니 3명이 젖은 땅에 작물을 심는 식으로 작업은 진행됐다.
“끝났슈~” 30분 가량 열심히 물을 뿌린 뒤 돌아섰는데, 허탈하다. 처음 물을 준 곳의 흙은 이미 바삭바삭할 정도로 말라버렸다. “물 주면 뭐 한데유, 돌아서면 다 마르는디~” 아들의 투정에 아버지는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거라도 적셔놔야 (작물을) 심지.”
작물을 심기 전 한 번, 심으면서 한 번, 심고 나서 한 번씩 땅을 적시려면 물통을 서너 번 반복해 채워야 했다. 아버지는 “물 받아 나르고, 뿌리는 시간만 아껴도 다른 일을 실컷 할 수 있다”고 푸념했다. 일손을 거들던 동네 할머니는 “마실 물로 농사짓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될 일”이라며 거든다.
농가가 식수로 쓰는 지하수까지 끌어다 논밭에 물을 주는 건 이 동네 물 공급을 조절하는 고풍저수지가 다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6일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총 저수량이 836만톤인 이곳의 저수율은 현재 5%로, 물을 더 이상 뺄 수 없는 사수량(死水量)에 가까웠다. 저수지 인근 주민 최봉진(54)씨는 “1975년 지어진 뒤로 이렇게 마른 적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다 못해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
고지대 마을은 그나마 저수지 혜택도 누리지 못해 아예 작파했다. 해발 150m에 위치한 와우리 주민들은 이미 지난 4월부터 농경지 10만㎡ 가량의 농작을 포기했단다. 운산면에서 몇 집 농사라도 살려보자며 지하수 관정을 뚫어보려 힘을 보탰지만 헛수고였고, 서산시에서 지원한 살수차 10대의 물도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그마저도 마르자, 굴착기를 동원해 다 마른 냇가를 파내 겨우겨우 하루치 물을 구했다. “이 물 마를 때까지 비 안 오면 올해 농사 접어야지 뭐.” 농민 장모(67)씨의 주름이 깊어졌다. 농작물 대신 잡초만 무성한 밭에선, 주민들 속을 모르는 동네 개들만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장씨는 “이렇게 악을 써가며 농사를 지어도 가을 되면 또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유인즉슨 20년째 제자리인 쌀값 때문. 97년에도 쌀 한 포대(80㎏) 값이 10만원 안팎이었는데, 지금도 그 정도 가격이란다. 그 사이 국내 쌀 소비는 크게 줄어든 반면, 해외 농산물 개방은 늘었다. 정씨는 “‘정책실패’보다 정부의 무관심과 방관에 지쳤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발 농업을 경시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당장 논밭에 댈 물도 없는 처지에, 땅도 속도 타 들어가는 상황에 그간의 서운함까지 곁들이는 건 그만큼 농촌 상황이 절박하다는 넋두리일 터. 기상청 예보에 단비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6일도 비는 운산면 일대에 점심때 찔끔, 저녁 때 조금(강수량 5㎜ 이내) 흩뿌리다 말았다. 이날 비가 촉촉히 내린 서울에서 보면 딴 나라 얘기로 들리겠다.
서산=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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