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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 대한민국 학부모

입력
2017.06.0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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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공교육을 버리고 사교육으로 각자도생의 길을 가게 된 사연을 고백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 학교 가기를 싫어한다. 이유를 묻자 한글을 잘 몰라 난처한 경우를 줄줄이 말한다. 담임선생님께 사정 얘기를 했더니 대부분 한글을 떼고 와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중학교 첫 시험 성적에 자극 받아 열심히 공부한 아이. 그런데 기말고사 시험지를 들고 와서 눈물을 흘린다. 문제가 너무 어려워 열심히 해도 풀 수 없단다. 학원에 다녀야 풀 수 있단다.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 성적이 충격적이다. 등급과 전국 석차를 보니 앞이 캄캄하다. 고심 끝에 학교 선생님과 상담했는데 과외를 시키라고 한다. 돈도 별로 안 드는데 너무 방치한 것 같다는 핀잔도 들었다. 분명 반칙이기에 조기교육, 선행학습은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한 부모의 알량한 소신 때문에 아이만 고생시킨다고 생각하니 후회되고 학교가 원망스럽다.

#어두운 아이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아 캐물었더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잘 모르는 일이니 자초지종을 확인해보겠다고 기다리고만 한다. #고교 입시가 이렇게 복잡한 줄이야. 전기고, 후기고에 영재고, 과학고, 특목고, 자사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종류도 너무 많다. 아이 친구들이 전기고 원서를 쓴다기에 담임선생님에게 전화해 물었더니 그런 정보는 학부모들이 알아서 챙긴다고 한다. #학부모 상담주간이라고 해서 학교를 찾았다. 워낙 시간이 짧아 다시 상담하기로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선생님이 기피한다는 느낌이 들어 결국 포기했다. 학교보다 학원을 더 신뢰하는 학부모들을 비난했었는데 이제는 왜 그런지 이해가 되고 그간 잘난 체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학기 초 학부모총회에 갔다. 선생님이 반별로 할당된 학부모 봉사자 인원을 채워야 한다고 읍소한다. 서로 피하느라 눈치 보는 게 싫어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다. #학부모들 사이에 원성이 자자한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매년 학부모들이 담합(?)해 교원평가에서 최저점을 줬지만 여전히 교직에 계신다. #정년을 앞둔 교장 선생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매년 갔던 수학여행도 취소하겠다고 한다. #학교에 불만이 있어 항의전화를 했더니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한 사안이니 학부모 대표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라고 한다. 누가 운영위원인지도 모르는데. 교권에는 민감한 학교 그러나 학부모들의 권리에는 왜 이리도 둔감한 걸까. 누구한테 하소연하나.

#일부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수행평가에 개입한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에 대책을 물었더니 현실적으로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일부 학교에서 상위권 대학 진학이 유력한 학생들에게 스펙을 몰아준다는 말을 듣고 학교에 확인했더니 어차피 떨어질 학생들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생활기록부에도 관여한다는 말을 듣고 학교에 전화해 절대 그런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했더니 작성권한이 있는 교사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일부 이기적이고 타락한 학부모들에게 휘둘리는 학교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내가 손해 보는 거야 감내하겠지만 아이가 피해본다고 생각하니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들처럼 악다구니를 부릴 수야 없겠지만 흉내라도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제발 이런 안타까운 심정에 공감이 되는 사람들이 새 정부의 교육정책을 책임지기 바란다. 공교육에 맺힌 한을 사교육으로 풀고 있는, 모순에 빠져있는 학부모 처지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면 큰일이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 기득권 진영, 학부모 민심이 그들을 지지할까 봐 큰 걱정이다.

박재원 학부모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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