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인사청문회 2라운드가 시작된다. 7일 국회는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모두 검증하는 ‘슈퍼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위장전입 등 주택법 위반, 농지법 위반, 연말정산 공제혜택 의혹 등이 주요 초점이 될 전망이다.▶관련기사보기
이미 예고된 야당의 거센 공세 속에 내각 인사를 결정하는 만큼, 기준도 까다롭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주요 내각의 엄격한 인사기준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잣대는 아니다. 다른 나라의 내각 결정 과정에서도 비리나 탈세, 도덕성 결여, 비전문성 등은 단연 낙마 1순위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 한국과는 사뭇 다른 기준으로 공직자 임명이 결정되거나 물러나기도 한다.
성소수자 차별은 중요한 도덕적 결함
지난달 5일(현지시각) 미국의 신임 육군장관 지명자였던 마크 그린 테네시주 주의회 상원의원이 사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를 지명한 지 한달 만의 일이다.
그린 지명자가 사퇴하게 된 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9월 미국 테네시주 채터누가에서 열린 공화당 풀뿌리 정치조직 ‘티파티’ 행사에 참석해 “정신의학자들에게 투표를 시켜보면 성전환은 질병이라고 할 것”이라는 비하발언을 했다. 성전환자(트랜스젠더)를 곧바로 겨냥한 것이다.
발언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내 인권단체는 물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나아가 그가 소속된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 존 매케인ㆍ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도 우려를 표했다. 청문과정에서 집중 포화를 받았던 그린 지명자는 결국 자진 사퇴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공직 임명 시 주요 도덕성 검증 사유가 된 지 오래다. 2004년 유럽연합(EU) 의회는 성소수자와 여성을 차별했다는 이유로 EU 법무담당 집행위원으로 후보자인 로코 부티글리오네 임명을 거부했다. 이탈리아의 EU 대사였던 부티글리오네가 청문회 도중 “동성애는 죄이며, 결혼한 여성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 탓이다. 결국 그의 인준은 유럽의회 의원 과반수 이상의 반대로 무산됐다.
사생활 검증하는 미국 vs 사생활은 업무와 별개라는 프랑스
해외 내각 인선 검증 과정에서 사생활의 중요도는 각 나라마다 다르다. 1989년 미국 제41대 대통령인 조지 H.부시는 존 타워 전 상원의원을 국방장관으로 지명했다. 타워 전 의원은 상임의원으로 재임하던 20여년 간 상원의 국방위원회 의장으로 명성을 쌓은 인물로, 국방장관직에도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부시 전 대통령이 그를 지명하기에 앞서 이미 정보를 수집한 미 연방수사국(FBI)은 타워 전 의원이 외형적인 이미지와 달리 알코올중독자이자 여성편력이 심한 사람이라고 폭로했다. 이로 인해 인사청문회에서 타워 전 의원의 임명동의안도 거부됐다.
이와 달리 프랑스에서 고위공직자의 사생활은 검증 영역을 벗어난다. 2010년 프랑스의 프레드리크 미테랑 전 문화부장관은 자신의 도서에서 밝힌 태국 여행 중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일각에선 그의 장관직 사임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결국 업무능력과는 무관한 사생활 문제란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그의 장관직은 유지됐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 정권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라시다 다티 현 유럽의회 의원은 2009년 미혼으로 딸을 출산해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오히려 다티 전 장관의 남자관계를 캐고 사생활을 파헤치는 언론의 태도를 비판했다.
같은 처지 이민자 도와줬다 발목 잡혀
미국의 이민자 출신 인사가 이민자를 도와주었다가 낙마한 사례도 있다. 린다 차베즈 전 UN특별보고관은 2001년 제43대 조지 W.부시 대통령의 지명으로 노동부장관 후보자가 됐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도중 그가 90년대 초 불법 이민자를 자신의 집에서 1년간 머물며 가정주부로 일하게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멕시코 출신 이민자인 차베즈 전 보고관은 자신의 과거와 처지가 비슷한 이민자에게 잠시 도움을 준 것 뿐 이라고 해명했지만 의회는 이를 명백한 이민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이는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반대하던 그의 평소 입장과도 배치됐다. 결국 차베즈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적 일관성 유지를 명분으로 자진 사퇴했다.
너무 일 잘해서 낙마하기도
자신의 일에 충실했다가 낙마한 인사도 있다. 환경운동가 레지나 로페즈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명으로 환경부장관직을 맡게 된 로페즈는 지난달 3일(현지시각) 열린 재신임 청문회에서 낙마했다. 자국내 광업 사업자들에게 환경법을 준수하라고 주문했다는 게 이유다.
필리핀 경제의 주축은 중국으로 수출하는 니켈 광석이다. 현재 필리핀 전역에서 약 40여개의 광산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니켈광산을 운영하면서 인근의 강과 논밭 등이 니켈과 산화철 등으로 오염된 상태다.
강성 환경운동가 출신인 로페즈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오수 방출 기준 등 환경법을 어긴 28개 광산회사의 문을 닫도록 지시했다. 환경 개선을 위해 더 이상의 광산업 허가도 내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러자 광산업계의 로비를 받은 필리핀 의회는 로페즈가 “자의적으로 국정 운영을 했다”며 그의 재신임을 거부했다. 자신의 소임을 다 했지만 결국 그는 정치적 판단에서 밀려나야만 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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