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소지 외면할 수 없어
文대통령 정공법 택해”
‘배치 지연’ 美에 먼저 설명한 듯
美선 철회로 받아들일 수도
청와대가 5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보고 누락 조사에서 국방부의 환경영향평가 고의 회피 정황을 포착함에 따라 이달 정상회담을 앞둔 한미관계도 아슬아슬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청와대가 그 동안 강조한 사드 배치의 절차적 문제가 확인되긴 했으나 정상적인 환경영향평가절차를 거칠 경우 사드 연내 배치가 사실상 불가능해 미국과 불협화음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시링 미 국방부 미사일 방어국장이 5일 청와대를 찾아 정의용 안보실장과 면담할 때만 해도 양측이 사드 조사 문제를 서로 양해하면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발사대 4기 반입 파문은 실무선의 책임으로 정리하고 대신 사드 배치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양측이 향후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청와대가 부지공여 면적과 기지 설계, 환경영향평가 등의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사드 배치 절차는 사실상 올스톱 하게 됐다. 청와대가 지적한 전략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밟으면 주민 의견수렴과 공청회 등을 거쳐야 해 사드 배치 연내 완료는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 특히 사드 부지공여는 주둔군지위협정(SOFA)과 공동환경평가절차(JEAP)에 따라 한미가 공동으로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 박근혜정부 당시 한미 군 당국이 문제를 덮고 넘어간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민감한 시점이지만 문제의 소지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문 대통령의 정공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미 측에 보고 누락 조사결과와 환경영향평가 등에 대한 추가조사 지시 내용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과 시링 청장도 “한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신뢰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드 배치 지연에 대해 미국 측과도 공감대가 있다는 의미다. 정의용 실장은 앞선 1일 미국을 방문해 허버트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만나 “환경영향평가를 철저히 하려면 사드 배치는 당초 예상보다 더 시간이 걸린다”고 밝히는 등 미국 측에 여러 경로로 사드 배치 지연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번 조치가 사드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국내적 문제여서 미국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밝히지만, 미국 입장에선 사드 배치 자체를 되돌리려는 움직임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없지 않다.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의원이 지난달 31일 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한국이 원치 않으면 사드 예산을 다른 데 쓰겠다”고 밝힌 것도 미국 기류의 일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미 국방장관이 지난 주말 싱가포르에서 만나 이견 노출을 피했지만, 청와대의 이번 발표로 사드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청와대가 사드 배치의 절차적 문제만 지적할 뿐 사드 자체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측이 타협점을 찾을 여지는 남아있다. 군 관계자는 “사드의 절차적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는 있지만 청와대가 사드 배치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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