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탄광 실태 담긴
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
2판 발행 앞두고 이상업씨 별세
“생전에 당신께서 쓰신 회고록을 개정 2판, 새 책으로 받아 보셨다면 좋았을 텐데…”
5일 오후, 일제 강점기 때 강제징용의 실상을 생생하게 고발한 고 이상업씨의 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 2판 발행 소식을 전하던 이국언(50)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2판이 나오기 꼭 1주일 전 이씨가 90세를 일기로 운명을 달리한 터였다. 이씨는 “이번 개정판은 고인의 수기가 그간 왜곡돼 왔던 강제징용을 바로 보려는 일본 사회의 작은 변화를 불러오는 트리거(방아쇠)가 됐다는 점을 담고 있는데, 고인이 이 책을 봤다면 느낌이 남달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실제 이번에 재출간된 2판에는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 보상 입법을 위한 일한(日韓) 공동행동 사무국장의 추천사 11쪽 분량이 추가됐다. 그는 추천사를 통해 고인의 회고록이 “탄광 현장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별 대우는 없었다”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가장 실증적인 반박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해 11월 초판과 올해 4월 일본어판에 이어 재발행된 2판은 사실상 고인에 대한 헌정판인 셈이다.
고인은 16세이던 1943년 11월 일본 후쿠오카(福岡)현 미쓰비시광업 가미야마다(上山田) 탄광으로 끌려갔다. 그는 굶주림에 시달리며 지하 1,500m 막장에서 하루 15시간 중노동에 시달렸다. 고인은 수기에서 탄광을 “지옥 같은 곳”이라고 했다. 어린 동료 4명이 고통 속에 신음하며 숨져 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한 터였다. 고인은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세 번째 탈출 시도 끝에 성공했고, 광복 이후 고향에 돌아왔다. 이후 1948년 영암 남초등학교를 시작으로 33년간 교직 생활을 이어 왔다.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은 고인이 끌려간 가미야마다 탄광이 2015년 7월 유네스코 산업유산으로 등록된 하시마(端島) 섬(일명 군함도)과 같은 미쓰비시광업 소속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고인이 수기를 통해 밝힌 조선인 노동자 사망에 대한 증언은 일본 정부가 부인하고 있는 ‘강제연행’과 강제노동’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단서였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내 양심적 역사학자들의 진실 찾기로도 이어졌고, 근대 사학자인 다케우치 야스히토(竹內康人)씨는 “귀중한 자료(수기)를 보내줘 고맙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실제 야노 히테키 사무국장은 추천사에서 다케우치씨가 펴낸 조선인 강제노동 자료집 내용도 소개했다. 자료집에 따르면 가미야마다 탄광에서 사망한 조선인 노동자 중 이름이 밝혀진 사람은 66명에 달한다. 또 후쿠오카현 특별경찰이 작성한 ‘노무동원 계획에 의한 이입 노무자 사업장별 조사표’에서 언급된 1944년 1월까지 사망자는 44명이었다. 야노 사무국장은 “고인의 수기는 강제징용 당시 사망자들의 상황을 직접 목격한 증언으로서 이 같은 조사 자료의 신뢰성을 뒷받침하고 있다”며 “특히 군함도에서의 탄광 노동과 조선인 노동자들을 어떻게 취급했는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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