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인출책에게 사기를 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자신을 경찰이라고 속여 보이스피싱 조직 인출책 권모(23)씨로부터 400만원을 가로챈 대포통장 배송책 권모(27)씨와 인출책을 맡은 뒤 사기 피해금액을 자신이 직접 가로챈 김모(20)씨 등 6명을 구속했다고 5일 밝혔다. ‘피의자 겸 피해자’인 인출책 권씨는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배송책 권씨는 올해 초 보이스피싱 범죄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보이스피싱범들이 사기 피해자로부터 받은 돈을 가로채겠다고 마음먹고 중국 조선족 직업정보 사이트에서 ‘동업자’ 2명을 구해 범행에 나섰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통장 배송책으로 위장취업 한 이들은 지난달 15일 강서구 송정역 근처에서 인출책 권씨가 자신들이 배달해 둔 통장과 카드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쫓아가 “경찰서 지능팀 수사관”이라고 속였다. 보이스피싱 범행 일체를 꿰뚫은 일당이 “현행범으로 잡혀갈지, 돈을 내놓을 지 택하라”고 협박하자 권씨는 결국 손에 들고 있던 400만원을 내줬다.
같은 조직이었지만 서로의 얼굴을 몰라 속일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 내부가 서로의 신원을 숨기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점을 알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배송책 권씨 일당은 범행 사흘 뒤인 18일 또 다시 통장 배송에 나섰다가 진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이 때 권씨가 배달한 통장을 가져간 김씨 등 인출책 3명도 붙잡았다. 이들의 수법은 더 대담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지난 12일과 15일, 17일 세 차례에 걸쳐 자신들이 인출한 돈 1,900만원을 조직에 넘기지 않고 직접 챙겼다. 경찰 관계자는 “소액을 받고 심부름만 하던 인출책들이 근래 들어 ‘어차피 불법이라 신고를 못할 것’이란 점 악용해 인출한 돈을 직접 가로채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들을 고용한 보이스피싱 총책이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중국 공안과 공조 통해 추적 중이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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